문영조(50)씨는 아들 문광욱 일병을 3년 전 연평도에서 잃었다. 문씨는 찢어지는 듯한 가슴 속 한(恨)을 이길 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떠난 줄 알았던 아들이 세상을 완전히 떠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고(故) 문 일병의 영혼은 21명의 장정(壯丁)에게 이식됐고, 이전보다 더욱 커져 돌아왔다.
"아버지, 어머니 나오세요. 저녁 드시러 가셔야죠." 20일 오후 전북 군산시 수송동의 문씨 집. 김재민(21)·이민구(21)씨가 문씨 부부를 찾았다. 문씨가 "아이고, 우리 아들 또 왔구나"라며 두 사람을 맞았다. 이날 문씨 부부와 두 '아들'은 군산 시내에서 저녁을 함께했다. 둘은 문 일병의 고향 1년 후배로 같은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수업이 끝나면 함께 공을 차며 놀았고, 문 일병 집에서 씻고 저녁을 먹곤 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으로 문 일병이 산화(散花)하자 이들은 문 일병의 뒤를 따라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긴 문씨 부부의 아들이 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문 일병의 후배였던 김재민씨는 "광욱이 형이 입대 전 해병대에 갈 때 우리도 가겠다고 약속했다"면서 "그 일이 터지고 나니까 진짜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고 말했다. 친구·후배였던 군산시 수송동 일대 젊은이 21명도 해병대에 줄지어 지원했다. 지금은 14명이 제대했고, 7명이 복무 중이다. "광욱이가 못다 마친 해병대를 우리가 가서 무사히 뒤를 이어 마쳐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21일엔 이들 중 15명이 또 문씨 부부를 찾아왔다.
새로운 아들은 입대할 때마다 '두 번째 아버지'를 찾아 큰절하고 '입대 신고'를 했다. 휴가 나올 때, 전역할 때 언제나 거수경례를 하며 신고를 했다. 문씨 부부는 아들이 새로 생길 때마다 훈련소로 환송을 나가고, 신병 수료식에 가서 '신고'를 받기도 했다.
"처음엔 우리 광욱이 얼굴을 보는 것 같고, 광욱이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아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젠 정말 아들입니다. 광욱이의 빈자리를 21명의 새 아들이 채워준 겁니다."
제대한 김재민·이민구씨는 문씨의 건설회사 현장소장 일을 수시로 거들고 2주에 한 번씩 함께 저녁을 먹는다. 김씨는 "입대했을 때 광욱이형 아버지가 나를 보고 엄청 우셨고, 첫 휴가 때 인사드리러 갔을 때도 우셨다"면서 "휴가 때마다 챙겨 주시고, 진짜 저희의 또 한 분의 아버지가 돼 주셨다"고 말했다. 김씨는 "생각해보니 집에는 연락도 안 하고 광욱이형 아버지한테 더 많이 전화를 드린 것 같다"며 "부대 상황을 많이 걱정하시는 아버지라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문 일병의 친구였던 고창아(22)· 정상명(22)씨도 대학에 다니면서도 한 달에 한 번 꼭 문씨를 찾아와 인사를 한다. 해병대에 복무 중인 7명의 새 아들도 문 일병 3주기를 맞아 휴가를 내고 고향 군산으로 온다. "가끔 광욱이형 얘기가 나오면 아버지가 내색을 안 하는 것 같은데도 좀 무거운 분위기가 생겨요. 그러면 아버지가 너무 힘드시니까 분위기 전환을 하시더라고요."
문씨는 "가족 전체가 밝아졌다"면서 "광욱이가 내려다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어느샌가 남은 가족을 생각하며 일에 열중하는 가장이 됐다"고 말했다. 우울증세를 보이던 아내도, 집에 오면 멍한 표정을 짓던 문씨도 새 아들 덕분에 나아졌다고 했다. 그 사이 고 문일병의 친형 정욱(24)씨의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문 일병)이 간 자리에 새 아들들과 함께 손자까지 생긴 것이다.
문씨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저도 인생 마감할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광욱이가 만나게 해준 새 아들들에게 먼 훗날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하늘나라에 가서 광욱이를 만날 수도 있을 거고…. 광욱이한테 '아빠 부끄럽지 않게 세상 살았다'고 말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