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대서 이미 큰 역할 하고 있는데도 한국은 '샤이(shy)'한 것 같아요. 다른 나라들에 좀 더 적극적으로 성공과 발전의 경험을 들려줄 필요가 있어요."

조셋 시런(Sheeran) 미국 아시아소사이어티 총괄사장(CEO)은 "한국은 빈곤·기아 해결의 훌륭한 모델"이라며 "예컨대 새마을운동은 이미 여러 개발도상국에 적용되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유엔의 식량원조 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기아라고 하면 흔히 아프리카를 떠올리는데 앞으로는 북한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들에서 영·유아의 '영양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도 했다.

아시아소사이어티는 1956년 존 록펠러 3세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만든 민간 외교단체로 아시아 6개국과 미국에 11개 지부를 두고 개인 및 기관 지도자들의 교류를 활성화해왔다. 워싱턴 타임스 편집국장,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 국무부 경제·기업·농업 담당 차관 등을 지낸 시런 사장은 2006년 11월부터 6년간 WFP 사무총장을 지냈다. 이후 세계경제포럼(WEF) 부회장을 거쳐 지난 5월 아시아소사이어티 CEO에 취임했다. 지난 8일 아시아소사이어티 한국지부 출범 5주년을 맞아 서울을 찾은 그녀를 만났다.

조셋 시런 아시아소사이어티 총괄사장이 대화 도중 빨간 플라스틱 컵을 내보이고 있다. 시런 사장은“아프리카 어린이가 하루에 이 컵만큼의 음식만 먹을 수 있어도 아이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런 사장은 빨간 플라스틱 컵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분리수거함에서 막 꺼낸 듯, 한쪽에 2㎝가량 금이 가 있는 낡은 물건이었다. "이것은 르완다의 파비안이라는 아이가 음식을 담아 먹는 컵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도전과 희망을 뜻하죠. 하루에 이 한 컵만 채울 수 있어도 아이의 삶이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에요."

시런 사장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식량 원조 담당자들을 만날 때면 빼놓지 않고 이 컵을 들고 갔다. "대화만으로 부족할 때가 있어요. 그때는 상징이 될 만한 물건이 필요합니다."

'빨간 컵'의 효과는 WFP의 실적으로 나타났다. 그녀가 WFP에 재임하는 동안 식량 지원국 숫자가 100개국을 넘어섰고, 국제 원조에 소극적이던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BRICs)과 걸프 국가들이 원조량 상위 10개국(Top10)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녀는 "내가 만난 각국 장관 중에는 '나도 이런 컵에 밥을 담아 먹은 적이 있다'며 눈물을 보인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기억은 남달랐다. 그녀는 "한국은 20대 때 '에어포스 원(미국 대통령 전용기)'을 타고 처음 왔다"면서 웃었다. 지미 카터 전(前)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 언론 담당 인턴으로 일하다 방한(訪韓) 일정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 워싱턴타임스 재직 중에는 북한의 김일성을 두 차례 인터뷰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질문도 허락되지 않았고 답변서만 받고 끝날 뻔했죠. 하지만 마지막 순간 벽에 걸린 백두산 천지 그림에 대해 묻다가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질문을 하게 됐어요. 1992년이었는데 그때 제 첫 질문은 '핵이 있느냐'였어요."

김일성에 대한 기억은 북한 아이들에 비하면 강렬하지 않았다. 2010년 북한의 식량 사정을 점검하기 위해 방북했을 때다. "여섯 살짜리 아이를 품에 안았는데 몸무게가 두 살짜리밖에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그런 아이들이 수두룩했어요."

시런 사장은 영·유아 시절의 영양 불균형은 뇌의 성장을 막아 한 국가의 미래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도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것. 당시 그녀는 WFP가 북한에서 하고 있던 임산부와 영·유아에 대한 영양강화 식품 생산사업에 한국 정부의 동참을 요청하기도 했다.

시런 사장은 앞으로 아시아소사이어티의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해 나갈 생각이다. 그녀는 "식량과 에너지, 창조적 분야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춰 나라들이 서로 경험을 서로 주고받는 대화의 장(場)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녀는 "모든 문제에는 해결할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엔 아직도 기아와 가난이 존재한다"고 했다. 세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26년 전인 1987년, 첫 아이가 아직 젖먹이일 때 기근을 겪고 있던 에티오피아에서 엄마의 마른 젖을 빨고 있는 아기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그때의 강렬한 느낌이 언론계와 공직을 거쳐 국제기구로 경력을 옮기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녀는 "정치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받기도 하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를 통한 융합 또한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