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보〉(147~185)=항우(項羽)는 유방(劉邦)과의 마지막 해하(垓下) 전투서 단 한 차례 패하고도 천하를 내주고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이 바둑서 백이 걸어온 길과 흡사하다. 안형준은 중국의 '원조 영재'를 상대로 한 치 밀리지 않고 맞서 잘 싸웠으나 지난 보(譜) 좌중앙 전투서 뜻밖의 착각을 범하며 위기에 몰렸다. 유일한 패전이었지만 대세를 결정할 치명적 1패였다.
겹겹이 둘러싼 적병에 맞서 백은 △에 붙여 혼신의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149로 포위돼선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밤은 깊어가는데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랫소리. 군사들은 두려움과 피곤함에 더욱 지쳐간다. 161로 거대한 주력 부대가 기어이 함몰했다. 162로 참고도처럼 변신을 시도해도 12까지 역시 전멸이다.
산을 뽑고 세상을 덮을 기개라 한들 이 지경이 되면 어쩔 수 없다. 168까지 우변을 크게 넣은 것 같지만 상중앙에 묻은 아군의 뼈를 벌충하기엔 어림도 없다. 큰 차이를 확인한 흑이 철저히 안전 운행을 편 덕에 그나마 차이가 줄었다. 백은 자진(自盡)하는 심정으로 우상 백 대마를 버린 느낌. 185가 이 바둑의 마지막 수가 됐다. 어디에선가 항우의 연인 우희(虞姬)의 애끓는 울음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