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세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이 12년 만에 시장직에서 물러난다. 5일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빌 드 블라지오(52) 뉴욕 공익옹호관이 후임자로 결정되면서 임기를 50여일 남겨두게 됐다. 블라지오는 이날 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셉 로타(57) 전 뉴욕교통공사(MTA) 회장을 누르고 109대 뉴욕 시장에 당선됐다. 블룸버그는 오는 12월 31일을 끝으로 블라지오에게 집무실을 넘겨준다.
‘세계 최고 부자가 돈과 무관한 일을 했던 시대.’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 1일자에서 블룸버그의 지난 12년 공직 기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블룸버그는 뉴욕시를 책임지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 경제 전문 통신사 블룸버그를 창업해 운영한 전문 경영인이었다. 그는 대형 금융 기업들과 언론사에 경제 데이터 단말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큰 돈을 벌었다.
그는 올해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400대 억만장자 중 10위로 뽑혔다. 재산은 310억달러(약 33조원)로 알려졌다. 지난 2010년 포브스는 그를 '억만장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1순위에 꼽았다. 유명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그를 "온건주의자며 실용주의자, 데이터(data) 신봉자이면서 정치색이 얕은 지도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성공한 기업가에 이어 세계 최대 도시의 경영자였던 그가 이제 어떤 길을 갈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 71세 억만장자 앞으로 행보 주목
그는 지난 1일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12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먼저 여자친구 다이애나 테일러와 함께 하와이와 뉴질랜드에서 골프를 즐기고, 중국을 방문해 기업들을 상대로 강연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익을 위해 계속해서 힘쓰겠다고 했다. 그는 “총, 이주민, 정부, 건강 분야 등 공익과 관련된 일을 할 예정이지만 어떤 방식이 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며 “다만 전문 투자자나 교수, 컨설턴트, 블룸버그 경영자로는 절대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포브스는 전했다.
어떤 이들은 블룸버그가 뉴욕 시장이라는 강력한 권력을 잃고 난 후에는 공익 증진에 힘쓰기는 어려울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 소비자자유센터의 저스틴 윌슨은 "그는 권위적인 시장이었다. 이제 사람들을 설득할 힘이 없다"며 "그가 가진 돈으로는 사람들 마음을 살 수 없다"고 포브스에 말했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게의치 않는다는 투다. 그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빌 클린턴은 대통령이 끝난 후에도 사회에 차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빌 게이츠도 그렇다”면서 “나도 총기 규제, 환경 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계속 일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공익 봉사에는 대통령직 수행이 들어있을 거라는 예상도 끊이지 않는다. 하워드 울프슨 뉴욕시 자문위원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2년반 안에 대선 출마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그는 훌륭한 대통령감”이라고 했다.
◆ 블룸버그 굿바이…12년 시장 활동 끝
블룸버그 시장은 뉴욕 시장 3선에 성공하며 지난 12년간 세계 금융 중심지의 지도자로 군림했다. 억만장자인 그는 재산을 무기로 다른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총기 규제, 공공장소 금연, 공공교육 개혁 같은 공공 이익 개선 정책을 펼쳐왔다. 강력한 총기규제 옹호자인 블룸버그는 지난 1월 뉴욕 의회에서 미국 주 가운데 가장 강력한 총기 규제안을 통과시켰다. 불심검문 정책을 도입한 결과 올 1월~10월 뉴욕시의 살인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나 낮아지기도 했다.
그는 다분히 친(親)기업적이었다. 블룸버그는 경제 전문 통신사의 창업자답게 기업과 금융업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고 평가된다. 임기 첫날의 공식 일정을 뉴욕증권거래소(NYSE) 방문으로 시작할 정도였다. 금융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며 기업 편에 서기도 했다. 아이작슨은 "그는 부자들로부터 돈을 거둘 필요가 없는 정책들을 중점적으로 펼쳤다"고 평가했다.
◆ 새로운 뉴욕 시장…블룸버그와 반대되는 인물
블룸버그의 후임인 블라지오 당선자는 이탈리아계 브루클린 출신이다. 그는 블룸버그가 부자들 편에서 빈부차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데 반해, 그 반대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블라지오는 23년 만의 첫 민주당 출신 시장이다. 브루클린 출신이 뉴욕 시장으로 당선된 것도 40년 만이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불평등 해소를 강조하며 민심을 얻었다. 부유층 증세로 유아 보육 시설을 증설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월가를 강력히 규제하는 도트 프랭크 법을 옹호하는 등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내 왔다. 블라지오는 당선이 확정된 후 브루클린에서 연설을 갖고 "오늘 뉴욕 시민들이 혁신의 길을 선택했다"며 "불평등을 없애는 건 쉽지 않지만, 함께 해나가자"고 말했다고 WP는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진보적인 행동주의자의 시대가 왔다"며 "블룸버그가 만든 두 도시(양극화)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