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문화부 차장

인터넷 검색에서 '이광수'를 입력하면, 99%가 연예인 이광수의 근황이다.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 출연하고 있는 이 모델 출신 배우의 별명은 '배신의 아이콘'. 공교롭다. 연예인 이광수에게 밀려 검색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춘원 이광수(1892~1950) 역시 한 세기 전에는 같은 아이콘이었으니까. 물론 '연예인 이광수'는 엔터테인먼트 소비의 대상이고, 춘원 이광수는 우리에게 영광과 치욕을 동시에 물려준 현실 세계의 '흠결 많은 아버지'라는 점이 큰 차이지만 말이다.

"이광수는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다"고 말한 사람은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이었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지만, 친일로 한국 정신사에 역시 감출 수 없는 흠집을 만든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일본에서 '이광수 심포지엄'이 처음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사화를 주저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광수 심포지엄' 소식<6일자 A23면>을 기자에게 알려온 인물은 '한글의 탄생'을 쓴 일본 국제교양대 노마 히데키 교수다. 그는 일본어로 쓴 이 책으로 2010년 마이니치신문사의 아시아태평양상을 받았고, 2012년에는 한글학회가 주는 주시경상을 받았다. 일본인이 한글 창제를 책으로 썼다는 점도 신선했지만, 양국 모두 편협한 내셔널리즘의 창(窓)을 벗어나 상으로까지 인정하고 격려했다는 유쾌한 사례가 교훈이 됐다.

이번 '이광수 심포지엄'의 지향 역시 마찬가지다. 극단적 민족주의의 좁은 창을 넘어, 일본 스스로도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반영하는 거울로서 이광수를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광수를 친일의 늪으로 이끈 주체가 일본 제국주의였다는 고백, 1940년대 총력전 체제로 전쟁을 수행하던 일본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도 포함된다.

다시, 공은 우리에게로 넘어온다. 부잣집 도령이었던 최남선과 달리, 이광수는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난 가난한 천재였다. 가난한 천재라는 출신 성분이 이광수의 친일과 배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겠다. 하지만 이광수는 하나의 얼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텍스트. 반일과 친일의 간편한 이분법을 넘어, 입체적이고 총체적인 존재로서 이광수를 복원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동서양 문학의 종합과 확장이라는 관점으로 이광수 '무정'을 들고 이번 심포지엄에 참가하는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는 "최근에는 이광수가 친일 문학인으로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화돼서, 학계에서도 언급 자체를 타기(唾棄)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학계에서도 이 정도라면, 대중에게는 물어볼 것도 없을 것이다.

그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는 것은 손쉬운 일. 삶도 예능 프로그램처럼 단순하다면 참 고마운 일이겠지만,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번 일본의 '이광수 심포지엄'이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정부와, 이분법과 진영 논리에 익숙해진 많은 사람들에게 성찰과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