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예전엔 길을 가다 보면 '약장수'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병, 저런 병 치료에 아무런 부작용 없이 도움된다는 약을 자랑하던 이들…. 별다른 놀이가 없었던 가난한 시절에 약장수들이 제공하는 볼거리는 그야말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들만이 가진 최고의 비밀무기는 바로 '만병통치약'! 인류의 모든 병을 단 하나의 약으로 고친다는…. 물론 그런 약이 존재할 리 없었기에 '말만 잘하는' 약장수는 '근거 없는 사기성'을 대표하는 문화 코드의 하나가 됐다.
얼마 전 아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다. 국내 모 대학 총장의 해외 대학 방문 때 있었던 일이란다. 외국 총장을 만나자마자 그가 자랑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학교에서 작년에 SCI 논문 수천 개를 발표했다고. SCI, 고로 'Science Citation Index'(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대한민국 연구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단어다. SCI급 잡지에 논문을 실어야만 승진도, 재계약도, 아니 연구자로서 존재성 그 자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모 대학 총장의 설명(자랑)을 한참 듣던 외국 대학 총장이 던진 한마디. "아, 그런데 SCI가 뭐지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영국 대학들의 존재성은 신학과 귀족들을 위한 상류층 교육에 있었다. 그야말로 귀족 '신사'들을 위한 사교육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1810년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와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형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하나 제시했다. 학문의 핵심은 사교육이 아닌 연구여야 한다고. 대학교는 귀족들을 위한 교육 기관이 아니라 자연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훔볼트 형제들이 설립한 '베를린 대학'(현재 훔볼트 대학)의 '연구 중심 대학교'라는 개념은 20세기에 들어와 전 세계 모든 대학의 모델이 되었다.
물론 시대는 또 한 번 변했다. 10~20년 동안 논문 하나 쓰지 않고 한 질문만을 파고드는, 훔볼트 형제가 꿈꾸었던 '상아탑' 형식의 학문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사회는 빠른 결과와 효율성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대 학문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구석에 책상 하나 마련해주면 열심히 연구할 수 있었던 19세기가 더 이상 아니란 말이다. MRI나 천체망원경, 입자 가속기 등 수십억 또는 수천억원의 국가적 투자가 필요하기에 국민의 사회적 동의가 필수적이다.
사이비 물건을 팔아야 하는 약장수에겐 선전과 홍보 그 자체가 자신의 실력이며 경쟁력이다. 어차피 물건의 내용이야 아무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사나 과학자는 다르다. 적절한 홍보와 선전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학문적 내용엔 무관심한 '보여주기식' 홍보는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