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첫 국정감사라는 산을 넘는 과정에서 상처가 더욱 커진 모양새다. 여당은 지도부가 직접 나서 경제활성화법안 처리를 위해 현 부총리가 야당을 만나 설득하라며 질책했고, 야당은 '반민생 부총리'라며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감 이후 예산안 심사와 각종 법안 처리를 진두지휘해야 할 현 부총리 입장에서는 부담이 더욱 커진 셈이다.
현 부총리에 대한 '비토(veto·거부권)'를 공식화한 것은 민주당이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종합평가 기자간담회에서 현 부총리를 포함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을 '국민 무시 철면피 5인방'으로 지목하며 퇴진을 요구했다.
전 원내대표는 현 부총리에 대해 "세제부터 전·월세 문제까지 온통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한 반(反)민생 경제부총리의 모습을 보여줬다"며 퇴진 요구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민주당 안팎에서도 현 부총리가 포함된 것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남재준 원장 등은 국정원 댓글 사건과 현대사 인식 등을 둘러싸고 갈등 관계였기 때문에 당연하지만 현 부총리는 민주당과 직접적인 마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과 내년 예산안에 대해 민주당은 '수용할 수 없다'며 선전포고를 한 상태"라면서 "전선을 보다 확고히 하는 측면에서 현 부총리의 퇴진 요구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여당에서도 국감을 거치며 현 부총리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더욱 확산된 분위기다. 현 부총리가 국감 기간 중 '법인세 단일세율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한 것이 직접적인 이유다. 기획재정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인 나성린 의원은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 "당을 대변해서 말하겠는데 법인세 단일화는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 섣불리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여당 상임위 간사가 경제부총리가 추진하겠다고 한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가하다'고 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세법 개정과 관련된 사안은 여당과 사전 협의를 거쳐 공동 보조를 맞춰야 하는데 법인세 단인세율은 사전 언질 없이 국감장에서 뜬금없이 꺼낸 것"이라면서 "'이런 파트너와 무슨 일을 하느냐'는 원성이 많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경제활성화 입법' 압박에 대한 반발이 현 부총리에 대한 비토론의 또 다른 배경으로 거론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홍원 총리, 현오석 부총리가 잇따라 '국회가 경제활성화 입법에 대해 협조를 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에 대한 반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법안을 국회에 던져놓고 뒷짐지고 있는 정부가 국회에 책임을 미룬다는 게 여야 정치권의 공통된 정서다.
야당 의원들은 기재위 국감에서 현 부총리를 향해 이같은 불만을 직접적으로 터뜨렸다. 민주당 간사인 김현미 의원과 민주당 원내 수석부대표인 정성호 의원은 "법안을 설명하려 만나자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소리냐"고 질책했고, 최재성 의원은 102개 경제활성화 법안의 상당수가 6월 국회 이후 제출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현오석 부총리의 국회질타는 정부의 무능에 눈감고 남 탓하는 무책임한 경제수장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당에서는 부총리 등이 나서 법안 처리를 위해 야당과 직접 접촉하라며 질책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30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입법 가울걷이가)결실을 맺으려면 장관은 직접 발로 뛰고 현장에서 부딪혀 국민은 물론 야당을 설득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했고, 새누리당의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인 김무성 의원은 "총리, 부총리는 담화 발표와 회의 발언에만 그치지 말고 정치권을 찾아와 호소하고 설득해 결국 일을 만들어내야 한다. 매일이라도 야당을 찾아가고 국민을 향해 (경제회복의 시급성을)웅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같은 여야의 공세는 현 부총리의 정치적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목한 102개 경제활성화 법안의 처리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현 부총리 등 경제팀에게 돌리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 차원에서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고, 야당은 정부 입법에 호락호락 협조하지 않겠다는 기싸움을 펼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현 부총리 등 경제팀이 눈에 확 띄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야 정치권의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