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31일 4주 만에 참석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야당에 대해 매우 강경한 메시지를 던졌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야당의 공세를 '정쟁'이라고 했고, "국민이 현혹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향후 정국은 또다시 대결 국면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국민 현혹되지 않을 것"
박 대통령은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개인적으로 의혹을 살 일을 하지 않았다"면서도 "정확하게 밝혀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덕 본 것 없다"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말해 왔으나 이날은 "개인적으로 의혹을 살 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국정원 등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표현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야당의 공세를 '정쟁(政爭)'이라고 비판하며 "사법부의 판단을 정치권이 미리 재단하고 정치적 의도로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우리 국민도 진실을 벗어난 정치 공세에는 현혹되지 않을 정도로 민도가 높다"고 했다. 야당의 '민주주의 쇠퇴' 주장에는 "성숙한 민주주의는 법을 지키고 국민을 위해 생각을 나누고 그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야당에 대한 비판은 과거와 비교해 강도가 상당히 높았다. 전날 10·30 재·보선의 '압승'도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야당에 대해 '민생을 외면하지 마라'고 요구하는 박 대통령의 행보는 향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2~9일 유럽을 순방한다. 박 대통령은 세일즈 외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새누리당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황우여 대표는 "이번 재·보선을 통해 과거보다는 미래, 정쟁보다는 민생 안정과 경제 활성화에 정치권이 더 분발해 달라는 분명한 국민의 뜻을 확인했다"고 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번 결과는 대선 불복의 유혹에 빠져 민생을 내버려둔 채 정쟁에 몰두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했다.
이런 압박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은 선거 개입 의혹을 국정원뿐만 아니라 사이버사령부 등 다른 국가기관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나온 박 대통령의 '정쟁 발언'이 야당의 '퇴로'를 차단해버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 "아전인수식 상황 인식"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상황 인식과 책임 떠넘기기에 불과하다"며 "사과는커녕 변명 같은 말로 일관했다"고 했다. 전 원내대표는 "대통령 사과, 책임자 문책, 재발 방지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며 "앞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수사를 기대할 수 없다면 특검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배재정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법과 원칙을 이야기하며 검찰총장, 수사팀장 찍어내고 수사를 방해한 게 누구냐?"며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던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선거법 위반은 무죄로 확신한다'던 이진한 중앙지검 차장, 외압의 실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한 수사가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김한길 대표는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나온 직후 핵심 관계자들과 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한 측근은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다시 촉구할 예정"이라며 "9일부터 재개(再開)될 장외투쟁 일정도 밝힐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특검 공식 요구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