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재벌 출신으로 총리를 4차례 지내며 20년간 이탈리아 정국을 주름잡아온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7) 전 총리가 남의 집 개밥을 줘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은 13일 탈세와 횡령죄로 대법원에서 1년 징역형이 확정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형벌로 가택연금 대신 사회봉사 명령에 따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가 죗값을 치를 봉사 활동으로는 애완견 돌보기, 육아 봉사 등이 꼽혔다. 고령(高齡)으로 감옥살이를 해내기엔 어렵다는 점이 감안됐다. 베를루스코니는 지난 8월 대법원 상고심에서 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사면을 받아 형기가 1년으로 줄었다.
그는 2011년 11월 재정 위기 와중에 성추문 등에 휩싸이면서 정계를 은퇴했다가 작년말 다시 복귀했지만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외곽 별장에서 술과 음악, 여자들이 어우러진 ‘붕가붕가(성적 문란행위를 뜻하는 이탈리아 속어)’ 파티를 즐긴 증거 사진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법정에까지 섰다. 이탈리아 법원은 그의 탈세·횡령 혐의에 유죄 판결을 내렸고 이탈리아 의회 상원위원회는 지난 4일 그의 의원직까지 박탈하면서 정계에서 축출됐다.
한쪽에선 베를루스코니가 이번 사회봉사를 통해 이미지 쇄신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도 한다. 그는 이탈리아 최대 상업 방송국인 ‘미디어셋’을 갖고 있으면서 과거에도 ‘이미지 조작’을 일삼았다. 로이터 통신은 베를루스코니가 사회봉사 활동을 나갈 때 그의 방송국 기자들이 따라 붙어 좋은 이미지를 부각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그의 과거 행적을 살펴보면, 그가 사회봉사 활동 이미지를 활용해 기성 정치권에 신물이 난 부동층의 표심을 흔들어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알베르토 카스텔비치 로마 루이스 대학교수는 “지금 이탈리아 국민들이 느끼는 정치 불신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며 “정치적 쇼맨십이 강한 베를루스코니의 봉사활동은 새로운 지지층을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고 말했다.
불과 2주 전까지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 정계에서 존재감을 보이려 했다는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 준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자유국민당은 지난달 28일 당 소속 장관 5명 모두가 사퇴하면서 국제금융시장에 불안을 안겼다. 베를루스코니의 변호인단은 “베를루스코니는 사회봉사 명령을 수행하는 시간을 빼고는 자유의 몸”이라며 “(그 시간을 활용해) 정치 생명도 이어 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