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전망이 호쾌하고 산과 물이 균형을 이룬 고택 다섯 군데가 있다. 강릉 선교장(船橋莊), 해남 녹우당(綠雨堂), 창녕 성 부잣집, 구례 운조루(雲鳥樓), 안동 임청각(臨淸閣)이다.
선교장은 경포대와 동해 바다가 연달아 있고 집 뒤의 500~600년 노송이 일품이다. 녹우당은 집 앞에 백만평 가까운 넓은 들판과 청룡·백호·주작·현무가 그림처럼 완비되어 있다. 성 부잣집은 지네 명당 오공혈(蜈蚣穴)의 지네 머리 부분에 자리 잡고 있고 앞산인 화왕산(火旺山)의 기세가 장엄하다. 운조루는 뒷산이 지리산 노고단이요, 앞에는 섬진강이 은하수처럼 흐르고 있다.
임청각은 태백산에서 갈라져 나온 세 군데의 지맥이 모여 있는 명당이다. 첫째는 태백산에서 봉화 거쳐 영남산으로 흘러온 지맥이 뭉쳐 있다. 둘째는 태백산에서 영양 장갈령을 거쳐 무산(巫山)으로 내려온 맥이다. 셋째는 태백산에서 영양 일월산을 거쳐 경주 죽장까지 내려갔고, 죽장에서 다시 역룡(逆龍)하여 갈라산으로 올라온 맥이다. 이 세 군데의 지맥을 파악하려면 적어도 반경 100㎞의 산맥 흐름을 꿰고 있어야 한다. 임청각은 집 앞으로 흐르는 물이 좋다. 낙동강과 반변천에서 각각 흘러온 물이 와부탄에서 합수되는 것이다. 수백년간 임청각의 주인들은 이 반변천을 배를 타고 오르내리며 선상의 풍류를 즐겼다. 집 대문 바로 앞에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도 겸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성 이씨들의 종택인 임청각은 1519년에 지어졌다.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초기 건축양식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집이다. 이 집 구조의 특징은 쓸 용(用) 자에 있다. 여자들이 살림하는 공간인 안채를 용 자로 지었는데 이 용 자 구조는 다면적 공간이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집터는 원래 비탈이 심한 언덕이었기 때문에 동선(動線)이 서로 연결된 방들을 만들어 내기가 어려웠다. 이 집 선조들은 그 동선의 연결을 고민하다가 이 용 자 구조를 고안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결론은 쓰기에 편리하다는 점이다. 용 자 의미 그대로이다. 안동 독립운동 집안의 임청각 앞을 지나는 철로는 언제나 옮겨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