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와 조선일보사가 제정한 제4회 위국헌신상 시상식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회관에서 수상자와 가족, 군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창의 부문 수상자 홍관선(37·공사 47기) 소령의 아들 승주(7)군은 시상 직후 단상으로 달려가 아빠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홍 소령은 "일이 바빠 아들과 놀아주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다"며 "오늘만큼은 아들에게 좋은 선물을 준 것 같다"며 웃었다.

이용주(39·특전부사관 98기) 상사는 작년 육군 '참군인 대상'에 이어 올해 '위국헌신상'에서도 충성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사의 어머니 권남이(65)씨는 "아들이 중사 때 낙하 훈련을 할 때 양발 뒤꿈치 연골이 부서지는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며 "아들이 고되게 일하는 걸 나라에서 알아주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제4회 위국헌신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강성문 중령, 이수원 소령, 한우철 소령, 이용주 상사, 손진수 원사, 뒷줄 왼쪽부터 김창열 군무원, 박인혁 군무원, 홍관선 소령, 황승미 군무원, 이찬우 대위, 박안식 중사.

용기 부문 수상자인 한우철(42·해사 49기) 소령의 부인 강유진(37)씨는 "남편이 언제라도 위험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서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소령은 상금 1000만원 전액을 평소 아내와 함께 후원하고 있는 경남 진해의 '자은 사회복지회관'에 기부하기로 했다.

'위국헌신'의 영웅들 뒤에는 '내조의 여왕'들이 있었다. 충성 부문 수상자 손진수(39·금오 18기) 원사의 부인 윤은숙(38)씨는 "남편이 배 타면 한 달 넘게 집을 비울 때도 있는데 일절 연락할 수 없다"며 "남편이 밖에서 집 걱정 안 하게끔 집안일을 빈틈없이 해놓는다"고 말했다. 책임 부문 수상자 강성문(51·학군 23기) 중령의 부인 홍인숙(52)씨는 "일에 바쁜 남편을 뒷바라지한 30년 세월을 보상받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인사말에서 "올해는 특히 정전협정 및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라며 "수상자들의 희생과 노고로 오늘도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축사에서 "위국헌신상은 군인이 받는 상 가운데 가장 명예로운 상"이라며 "수상자 개인 차원을 넘어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존경받는 문화를 우리 사회 저변에 확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충성부문 이용주 상사]

천안함 폭침 사건 등 목숨 건 수중 탐색 도맡아

1995년 특전부사관 98기로 임관해 현재 '특전사 중의 특전사'로 불리는 최정예 특수부대 707특수임무대대에서 복무하고 있다. 해상 척후조 교육, 산악 전문 과정, 고공 기본 과정 등 다양한 특수교육을 이수했다. 국가급(級) 대테러 출동 대기 3500여회, 해외 VIP 부대 방문 중 대테러 훈련 340회, 미국 등과의 국제 연합훈련 12회, 레바논 파병(1진) 등의 임무를 수행한 해상 및 대(對)테러 작전 분야 최고의 전문 부사관이다. 그는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707대대에서 교육훈련지원부사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98년 강원도 묵호항에서 북한군 잠수정 침투 사건 때 수중 탐색 작전을 실시해 북한 침투 대원(익사)의 장비를 발견해냈다. 같은 해 태풍 '야니'로 지리산 일대 계곡이 범람했을 때 고립된 야영객을 구조하고 실종자 수색에 나서 시신을 찾아냈다.

그는 "천안함 폭침 때 수색 작업에 나섰던 때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당시 조류 세기는 초속 2.5m, 파도 높이 1.5~2m 등 정상적인 수색 작전이 불가능했으나 특전사와 특수전여단(UDT/SEAL) 팀은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바다에 뛰어들었던 고(故) 한주호 준위를 잊을 수 없다"며 "그와 이 영광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용기부문 한우철 소령]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 선원 구출

지난해 12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돼 582일 동안 억류됐던 제미니호 피랍 선원 구출 작전에서 직접 구조헬기를 몰았던 해군 헬기 조종사다. 그는 "당시 1분이 1시간 같았다"고 회상했다. 구출 작전 당일인 작년 12월 1일 비와 강풍, 높은 파도로 선박을 이용한 구조가 불가능해지자 군은 링스헬기 투입을 결정했다. 열악한 기상 상황은 헬기 비행에도 치명적이었지만 대안이 없었다고 한다. 한 소령은 "소말리아 해안에 접근하자 중화기로 무장한 해적 차량이 시야에 들어왔다"며 "인근에서 3대의 무장 차량이 추가로 식별돼 이들의 돌발 행동에도 대비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자리 비행을 하며 호이스트(구조용 바구니)를 헬기에서 내려 선원들을 구조해냈다. 한 소령은 "해상에서 대기 중이던 강감찬함에 도착했을 때 선장인 박현일씨가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10일 동안 밤을 새워가며 사전 예행연습을 실시한 청해부대 11진 전 장병이 이룬 성과"라고 했다. 1995년 해사 49기로 임관한 뒤 헬기 조종사로 18년간 2800여시간을 비행했다. 2007년부터 조종사 교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각종 함대 기동훈련과 한·미 연합훈련에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한 공로로 6전단장 표창과 해군참모총장 표창을 각각 2회 수상했다.

[충성부문 손진수 원사]

7년째 세종대왕함을 집 삼아… 北미사일 추적

해군 이지스함 전투 체계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세종대왕함이 집 같다"고 말한다. 2007년 진수식 이후부터 세종대왕함에서 복무해 왔다. 2009년 4월 5일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 대포동 2호를 시험 발사했을 때 한국 해군 최초로 이를 직접 탐지·추적하는 데 성공해 합참의장 표창을 받았다. 지난해 4월엔 북한 장거리 로켓(미사일) 탐지에 성공했고, 그해 12월에는 은하3호 로켓 1단 추진체의 낙하지점을 정확히 예측해 우리 군이 처음으로 북한 장거리 로켓 추진체를 수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실전과 같은 사격 훈련을 치밀하게 함으로써 세종대왕함이 2010년 7월 하와이 환태평양훈련(RIMPAC) 함포 사격 대회에서 세계 13개국 함정 37척 중 1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창의부문 박인혁 군무원]

39년 선박정비의 名匠, 軍예산 164억 아껴

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기관 정비 분야에서 해군 내 최고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올해 경력 39년 차로 2011년 군에서 처음으로 선박 기관 분야 정비의 명장(名匠)으로 선정됐다. 1974년 해군 부사관으로 임관한 뒤 이듬해 부친의 뒤를 이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1987년 군무원으로 임용된 박인혁 서기관은 정비 방법 개선 등에 관한 연구로 국무총리 창안 표창 등 17차례 상을 받았다. 그가 개발한 함정용 가스터빈 자체 정비 기술은 164억원 상당의 국방 예산을 절감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 서기관은 "군과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계속 공부하고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기부문 이수원 소령]

추락 전투기 조종사 살린 항공구조의 베테랑

2009년 3월 31일 공군의 KF-16 전투기가 바다 위에 추락했다. 조종사는 비상 탈출에 성공했지만 빨리 구조하지 않으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컸다. 이때 조종사 구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 HH-60 헬기를 조종한 이 소령(공군 학사 100기)이다. 그는 공군의 탐색 구조 대회에 두 차례 참가해 모두 종합 최우수상을 받은 항공 구조 분야의 베테랑이다. 2008년 11월 4일 F-5E 전투기 2대가 공중 충돌했을 때도 생존 조종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국가 정상회담 행사 지원 비행 13회, 총리 등 귀빈 수송 187회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소령은 "2003부터 2008년 사이 서북 도서 지역의 민간인 응급 환자들을 육지로 무사히 수송했을 때가 가장 보람 있었다"고 했다.

[책임부문 박안식 중사]

특전부사관 전역후 재임관… 전투전사 1위 경력

1999년 육군 특전부사관으로 임관했다가 2003년 전역했지만 이듬해 다시 특전부사관이 됐다. "최고의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재임관한 그는 2009년 '톱 오브 톱(top of top)' 전투전사 선발 때 대대 간부대표로 출전해 1위에 입상했고, 저격수 사격교관, 대대 유격 교관을 맡아 부대 전투력 향상에 기여했다. 통신대 유선반장으로서 2010년 사단 주최 해빙기 지휘통신분야 점검에서 완벽한 준비 태세를 한 공로로 사단장 표창을 받았다. 이런 성과는 2010년 제1회 군 리더십 실천 사례로 발탁돼 국방대학총장 표창을 받았다. 2011년에는 전투형 강군 육성에 기여한 공로로 제11회 육탄 10용사로 선발, 육군참모총장 표창을 받았다. 박 중사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선배가 되겠다"고 말했다.

[창의부문 홍관선 소령]

연평도 도발 이후 NLL 24시 감시체제 창안

공군 제19전투비행단에서 선임 편대장을 맡고 있으며 군내에서 '국제통'이자 '전략통'으로 꼽힌다. 공군사관학교 47기로 1999년 임관한 그는 미국 공군대학 초급지휘관 과정을 수료했다. 당시 15개국 장교들과 함께 걸프전, 이라크전 때의 공군 작전에 대해 연구했다. 미 공군의 각종 군사 작전에 한국 대표자로 유일하게 참가했다. 특히 2010년 북한의 연평도 기습 포격사건 이후 당시 상황을 분석해 'NLL(북방한계선) 지역 24시간 감시 체제 및 즉각 공격 태세'를 창안해 군 작전태세 향상에 기여했다. 홍 소령은 "한국군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다"며 "조종사로서는 스텔스 전투기를 타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헌신부문 황승미 군무원]

주말·명절 가리지 않고 15년간 치매 노인 도와

1998년 부대 인근 노인 요양 시설인 '요셉의 집'에서 치매 노인의 청소·목욕·빨래를 돕는 것을 시작으로 15년째 치매 노인을 위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황 주무관은 "제가 어려울 때 어르신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며 "오히려 제가 감사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9년 육군 조병창(造兵廠)에서 군무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출산으로 퇴직했다. 남편이 근무 도중 사고로 뇌 수술을 받고, 시아버지마저 건강이 악화되면서 국가 보훈 대상자가 돼 1987년 군무원 기능직으로 재취업했다. 현재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남편을 간호하는 고된 생활 속에서도 주말이나 명절이면 치매 노인을 찾아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주무관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저를 도와준 부대 사람들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책임부문 강성문 중령]

軍사이버 전사 967명 키워낸 보안 전문가

군 사이버 전사(戰士)를 키우는 국방 정보 보호 분야의 권위자로 육군 학군장교 23기 출신이다. 2000년 8월 한미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중 군에서 처음으로 사이버 모의 훈련을 실시했고, 정부 부처 중 처음으로 통합 보안 관제 시스템 및 사이버 보안 사고 수사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기여했다. 사이버사령부 창설을 위한 특별대책반(TF) 요원으로 활동했으며, 주요 정보통신 기반 체계에 대한 취약점 분석 평가를 실시해 군의 사이버 보안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2008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에서 정보보호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방정보보호교육센터를 설치해 군 정보통신 및 컴퓨터 침해 사고 대응반(CERT) 요원 967명을 양성했다. 그는 "내가 키운 사이버 전사가 국가 안보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미동맹상 김창열 군무원]

8000명 넘는 韓美 연합 훈련 전문가 양성

1990년부터 18년간 우리나라에서 현역 장교 및 군무원으로 임무를 수행해온 한국계 주한미군 군무원이다. 1990년 걸프전 때 한국군 의무팀을 수송하기 위해 한국 공군 C-130의 배치를 지휘해 총 150명의 한국군을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도록 했다. 주한 미 7공군사령부 작전장교로 근무했을 때는 미군 공격기 AC-130의 한국 배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한국 공군 작전사령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2004년 현역 장교에서 군무원으로 신분이 바뀐 뒤에는 8년간 8000명 이상의 한·미 연합 연습 전문가를 양성한 공로로 한국군 합참의장 표창도 받았다. 김씨는 "국적은 미국이지만 대한인의 핏줄을 받은 한국계로서 양국의 유대 강화 및 우호 증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헌신부문 이찬우 대위]

빨간 명찰 단 수호천사, 봉사활동만 8000시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장애인 봉사 활동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8000시간 이상 봉사 활동을 해 '빨간 명찰(해병대)을 단 수호천사'로 불린다.

병사로 해병대 의무 복무를 마치고 2002년 해병대 사관후보생 97기로 재입대하고서도 쉬는 날이면 봉사 활동을 이어갔다. 2012년에는 장애인봉사협회장 및 경상북도 도의회 의장 표창을 받았다. 2013년에도 보건복지부·국민나눔운동본부가 주관한 '제2의 행복나눔인상' 장관상을 받았다. 사후(死後) 인체 조직 기증 서약, 백혈병 투병 환자를 위한 조혈모세포 기증 서약도 했다. 현재 해병대 상륙지원단에서 복무하고 있는 이 대위는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인데 계속 주목을 받게 돼 쑥스럽다"며 "더 많은 사람이 봉사의 즐거움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