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성(52) 목사가 지인 3만여 명에게 보내는 소식지 '김해성 희망편지' 9일자에는 '희망'이 사라졌다. 이날 편지의 제목은 '급보-방화, 그리고 잿더미'. 작년 초부터 김 목사가 매주 써서 보낸 이 편지에 이렇게 어두운 얘기가 담긴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불길이 순식간에 번지면서 시커먼 연기가 건물을 뒤덮고, 화재에 놀란 중국 동포들이 건물 옥상으로 대피하고, 어떤 사람은 뛰어내리고…. 급한 대로 빵과 우유 구해 끼니 대신 드렸지만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하루도 내일을 걱정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화재보험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화재보험에 들지 못했던 절절한 사연도 편지에 담았다. 그는 "한국 정부는 이주 노동자들이 굶주리고, 버려지고, 병들고, 죽어도 손대지 않는다. 이들을 돌보는 법과 제도가 없기 때문"이라며 "법과 제도가 없으니 나도 모른다고 할 순 없다"고 했다.
김해성 목사는 1983년 한신대를 졸업하고 성직자의 길을 걸으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외국인 근로자 인권 보호와 지원활동에 뛰어들어 20년 넘게 헌신하고 있는 '외국인 인권 운동의 산증인'이다. '외국인 근로자 처우에 관한 법률' 제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한국인 대상 노동상담소를 운영하던 1992년, 공장에서 일하다 팔이 절단된 필리핀 노동자 에리엘 갈락이 찾아온 것이 그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일하게 된 계기였다. 김 목사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일자리까지 잃은 갈락을 도와 보상금 1500만원을 받아냈고, 이어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16층에서 추락해 숨진 외국인 노동자의 유족이 보상금 8800만원을 받는 데도 앞장섰다.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선 '김해성 목사에게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임금이나 산업재해 보상금을 받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김 목사를 찾기 시작했고, 김 목사가 원래 운영하던 노동상담소는 한국인 노동자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더 많아졌다.
1994년 4월 김 목사는 성남에 '외국인 노동자의 집/중국 동포의 집'을 설립했다. 방 한 칸이 전부인 이곳엔 늘 도움을 바라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문 앞으로 길게 줄을 섰다.
2000년 1월 1일, 김 목사는 중국 동포 5만여명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가리봉동에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을 세웠다.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원과 약국, 한의원, 치과를 운영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돌봤다. 김 목사는 인종차별 논란이 있던 '살색' 표현을 '살구색'으로 바꾸는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