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s1 박지혜 기자

한글이 외국어와 어법에 맞지 않게 새로 만들어진 말들로 몸살을 앓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대중문화인 가요계에서 한글은 외국 문화 유입, 쉽게 쓰이는 속어 등 빠르게 소비되는 유행에 영향을 받아 유난히 외면받곤 한다. 오롯이 한글로 쓰인 가수 이름, 노래 제목, 가사 등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럼에도 한글로 유려하게 감성을 표현한 가요는 적지 않다. 왠지 '있어 보이는' 영어나 입에 쉽게 붙는 속어가 없어도 대중의 정서를 자극하는 가요는 여전히 곳곳에 있다. 한글날을 맞아 김작가, 나도원, 노준영, 서정민갑, 이대화, 임진모 등 대중음악평론가 6명이 꼽은 가사가 아름다운 가요를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

◇가득한 시정(詩情)…'소금인형', '가시나무'

'바다의 깊이를 재기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알기위해 나는…소금인형처럼…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서정민갑 평론가는 시인 류시화의 '소금인형'을 노래로 옮긴 안치환의 '소금인형'의 가사를 소개했다.

서 평론가는 "시를 노래로 만들 때 원작 시의 분위기를 벗어날 수가 없어 잘 소화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며 "상대방과 하나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안치환 특유의 거칠고 격정적인 음색으로 표현됐다. 시와 노래를 굉장히 잘 어울리게 소화했다는 것 자체가 훌륭하다"고 설명했다.

시정을 잘 담아낸 또 다른 노래는 이대화 평론가가 추천한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다. 이 평론가는 "가요의 노랫말이 보여줄 수 있는 시정성을 최대한 보여준다"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부분을 들었다. 이 평론가는 "단순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 가사만으로도 아름다움이 충분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노래 속 통찰…'스무살', '바람이 분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2004년에 발표된 이장혁 1집에는 '스무살'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내가 알던 형들은 하나 둘 날개를 접고 아니라던 곳으로 조금씩 스며들었지'라고 시작하는 '스무살'을 듣다 보면 어지러운 청춘의 이야기가 구체적인 장면으로 떠오른다.

김작가 평론가는 "'스무살'은 그 나이대에 겪을 수 있는 방황을 잘 묘사해냈다. 가사는 어두운 면이 있지만 스무살이 겪는 방황의 순간들을 전체적인 이야기로 잘 집어냈다"고 평했다.

나도원 평론가는 이장혁의 정규 2집에 실린 '봄'의 가사를 선정했다. 나 평론가는 "봄의 풍경을 관조적이면서 쓸쓸하게 그렸다. 봄이 주는 화사함 속에서 쓸쓸함이 묻어나오는 것이 특징"이라고 언급했다. 이장혁에게 봄은 '작은 벌레들은 깨어나 아무도 몰래 집을 짓고 주어진 만큼의 날들을 위해 힘을 다해 싸우'는 계절이다.

이소라 6집의 타이틀곡 '바람이 분다'도 빼놓을 수 없다. 서 평론가는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가사는 단순히 슬프다는 감정을 넘어서서 이별 그 자체를 사유하게 한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정도"라고 높이 샀다.

임진모 평론가는 조용필의 대표곡 중 하나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가사가 "발표 당시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임 평론가는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같은 가사는 삶에 대한 철학적 단상들을 나타내 인상적"이라고 얘기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1985년 조용필 정규 앨범 8집에 수록됐지만 그가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라고 읊조리며 시작하는 이 노래는 여전히 익숙하다.

◇담담한 정곡…'편지', '비처럼 음악처럼'

노준영 평론가는 하오체로 꾸며진 김광진의 '편지'를 아름다운 가사의 곡으로 꼽았다. 노 평론가는 "투박하면서 진정성이 묻어나는 매력이 있다. 쥐어 짜려고 하지 않아도 가슴속에 다가오는 정서가 한글의 매력인 것 같다"고 짚었다.

'아름다운 음악같은 우리의…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변치 않는 애창곡인 고(故)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의 가사도 음미해볼 만하다. 이대화 평론가는 "음악 없이 노랫말만 듣고 있어도 음악적 분위기가 피어나는 것 같다. 일상적이면서도 편한 말로 심정을 완벽하게 전달한다"고 했다.

◇독특한 시도…'문제없어요', '추격자'

서정민갑 평론가는 "신인급 중 가사가 좋은 뮤지션"이라며 김일두의 '문제없어요'를 소개했다. '당신이 이혼녀라 할지라도 난 좋아요…당신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담배뿐 아니라 로큰롤도 끊겠어요'라는 가사는 과감하면서도 재치있다.

아이돌 중에서는 인피니트의 '추격자'가 눈여겨 볼 만하다. 노준영 평론가는 "아이돌 음악은 유행을 좇다보니 영어 가사를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며 '굿 바이'와 '걸' 등이 세번 등장할 뿐인 '추격자'의 가사를 흥미로운 시도로 여겼다.

인피니트는 '추격자'의 '어기야 디여라차 어기야디야'라는 가사로 대중의 귀를 사로잡기도 했다. '어기야디야' 줄여서 '어기야'는 뱃사람들이 노를 저으며 흥겨울 때 내는 소리다.

밴드 버스커버스커는 '여수밤바다'와 '밤'으로 두명의 평론가로부터 아름다운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고 평가받았다.

임진모 평론가는 "셀 수 없을 만큼 좋은 가사가 많다"며 "대중가요에서 사랑받고 유명세를 구축한 사람들은 곡도 곡이지만 가사가 좋아서 인기를 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