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산안 갈등이 1주일째 평행선을 그으면서 부채한도 증액 협상에 대한 불안마저 고조되고 있다. 지금 대로라면 사상 초유의 미국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가 자칫 현실로 닥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세계 각국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최대 채권국인 중국 정부가 처음으로 디폴트에 대한 우려를 공식 표명했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도 미 정치권 대립에 대한 성토가 나왔다. 유럽에서도 미국의 ‘정치 싸움’이 글로벌 금융 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뉴욕타임스(NYT)가 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유럽 “간신히 살아나나 했는데…”

미국의 디폴트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겨우 경기 회복 조짐을 보인 유럽 대륙이 또다른 위기가 터질 수 있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영국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제니아 도맨디는 “국제사회는 미국이 행동에 나설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면서 “최근 시리아 문제와 더불어 예산안 문제는 전 세계를 안절부절 못하게 했다”고 평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의 알랑 프라송 뉴욕 특파원은 NYT에 “미국 정치권의 모습은 대통령 책임제가 아닌, (내각 책임제인) 이탈리아처럼 계속해서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디폴트에 대한) 불안감이 전 유럽에 퍼져 있다”며 “엄청난 금융위기를 몰고 올 수 있는 부채한도 문제를 염려하고 있다”고 했다.

파리정치대학교의 경제학자 장 폴 피트시는 “미국에서 디폴트가 발생하면 미국의 경제성장세가 둔해지고 달러 가치가 내려갈 수 있다”며 “최악의 경우엔 유럽의 취약한 은행 시스템과 더불어 전례없는 금융 시스템의 위기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NYT는 전했다.

◆ 中·日 정부 “美 디폴트 우려된다”

아시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최대 채권국인 중국은 7일 처음으로 미국 디폴트와 관련해 우려를 공식 표명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주광야오(朱光耀) 중국 재정부 부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간이 촉박하다”면서 “(미국은) 중국 투자자산의 안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올해 7월 기준으로 1조2800억달러의 미국 국채를 보유한 최대 채권국이다.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면 중국의 자산가치가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FT는 또 “일본 재무성 역시 미국의 디폴트가 통화 시장에 가져올 잠재적인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이 달러화를 투매하면서 달러 가치가 급락하면, 반대로 엔화 가치가 오를 수 있다는 우려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NYT는 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부폐쇄 사태 때문에 APEC 정상회담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 정치권의 상황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내가 오바마 대통령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 역시 APEC 회담에 불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민주당, 자체 부채한도 증액 표결 추진…정치권 돌파구 찾을까

부채한도 협상 시한이 다가오자 미국 정치권에서도 변화의 기미가 나타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상원을 주도하는 민주당은 부채한도를 증액하는 자체 법안을 이번 주 안에 표결에 부칠 계획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최종 입법을 위해서는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에서도 법안이 통과돼야 하지만, 일단 디폴트를 막겠다는 결의를 나타낸 것이다.

진 스펄링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도 이날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가 주최한 조찬 행사에서 “부채한도를 얼마나, 어떻게 올릴지 결정하는 건 의회에 달렸다”고 말해, 공화당이 주장해 온 단기 부채한도 증액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 몇 주 동안만이라도 부채한도를 올려 공화당과 민주당이 협상할 시간을 벌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존 베이너 하원 의장의 대변인은 “백악관이 단기 부채 증액을 수용할 의사가 있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라면서도 “여기엔 예산 수정안이 반드시 함께 따라와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편 월가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들은 사회 안전망을 비롯한 다른 정부 지출을 중단한 채 채무부터 갚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 정치권이 10월 중순까지 부채한도 증액 협상에 실패하면, 미국 연방정부는 사회 안전망 지출까지도 미룬 채 채무 상환에 나서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정부는 10월 31일 59억달러, 11월 15일에는 300억달러의 채무 이자를 각각 지불해야 한다.

최근 공화당 의원과 오바마 행정부 관계자들을 만난 월가 CEO들은 “사회 안전망 지출보다 채무 상환을 중시하는 건 투자자에게 불안감을 조성해 오히려 금융 시장 붕괴를 몰고 올 수 있다”고 밝혔다고 WSJ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