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해달라고요? 저는 선수가 아니에요.(I'm not a player.)" "무슨 소리, 당신은 훌륭한 골퍼예요.(No, you are a great player.)"
최경주와 미국 팬이 프레지던츠컵 현장에서 주고받는 농담을 들으면서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미국팀과 유럽을 제외한 세계연합팀의 골프 대항전인 제10회 프레지던츠컵(The Presidents Cup·이하 한국 시각 4~7일)을 하루 앞둔 3일 미국 오하이오주 더블린의 뮤어필드 빌리지 골프클럽(파72·7386야드)에는 2만명 가까운 팬이 몰렸다. 양팀의 마지막 연습 라운드를 보기 위해 모인 인파였다.
미국 프로골프(PGA)투어에서 8승을 거두며 프레지던츠컵에 세 차례 출전했던 한국 골프의 간판스타 최경주(43)는 이번에 출전 자격을 얻지 못했다. 한때 세계 랭킹 5위까지 기록했던 최경주는 최근 2년간 부진으로 현재 118위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순위가 102위 배상문이다. 세계연합팀은 세계 랭킹을 기준으로 10명을 뽑고 단장 추천으로 2명을 추가한다. 차기 대회인 2015년 프레지던츠컵을 개최하는 한국 골프는 출전 선수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대회 유치에 성공했던 2011년 최경주와 양용은, 김경태 등 역대 최다인 3명이 출전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아쉬움을 남긴다.
최경주는 미 PGA투어의 요청으로 뮤어필드 빌리지 골프클럽에서 한국 팬들을 위한 특별 홍보 영상을 제작하고 있었다. 2015년 한국 대회를 앞두고 최경주의 입을 빌려 매치플레이로 벌어지는 프레지던츠컵의 특징과 분위기, 이번 대회의 홀별 특징, 팬들의 관전 매너 등을 전달한다는 취지다.
드라이버 샷으로 '원 온'도 노려볼 수 있게 세팅한 14번홀(파4·325야드) 티잉 그라운드 뒤에서 특유의 구수한 입담을 발휘하던 최경주의 얼굴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2007년 이 골프장에서 열린 미 PGA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을 때 그가 어린 시절 잭 니클라우스의 스윙 교본을 보며 골프를 독학했다는 사실이 큰 화제였다. PGA투어에 진출하기 직전인 1999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메모리얼 토너먼트에 출전했던 최경주에게 뮤어필드 빌리지 골프클럽은 고향 같은 골프장이다. 그래서 이번 프레지던츠컵에 꼭 출전하고 싶어 거의 매 대회를 출전하는 강행군을 했지만 뜻처럼 되지 않았다고 했다.
최경주는 2015년 대회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2년간 한국 선수들이 비장한 각오로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나이가 먹으면서 근육의 탄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번 경험을 자극 삼아 지방도 태우고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겠다"고 했다. 그는 "배상문과 노승열, 이동환 등 재능 있는 젊은 후배들도 왜 골프를 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상 2015년 대회의 PGA투어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는 최경주는 "너무 설친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팬들의 성숙한 관전 매너 향상을 위해 열심히 뛰어보겠다"고 했다. 국내에서 골프 대회가 열릴 때마다 불거지는 사진 촬영과 휴대폰 벨소리를 없애도록 더 적극적인 캠페인을 펼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국내에서 매년 개최하는 최경주 CJ인비테이셔널 대회 때 휴대폰 벨소리 없는 대회, 담배꽁초 없는 대회 등을 주창해 관심을 끌었다.
최경주는 "프레지던츠컵 개최를 통해 스포츠로서 합당한 인식과 대우를 받지 못하는 국내의 골프 인식을 바꾸고 선수와 팬들이 한 몸처럼 호흡하는 관전 문화가 자리 잡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