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은 조수미에 대해 '신이 내린 목소리'라며 극찬했다. 그녀가 베르디 오페라 의 '질다'로 데뷔한 지 벌써 27년이 됐다.
작은 체구의 동양인 소프라노, 조수미. 그녀가 음악의 본고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탈리아 로마에 거주하고 있는 조수미는 1년에 두 번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에 머무르는 짧은 시간 동안, 조수미는 전국 각지에서 공연을 중심으로 방송, 인터뷰, 봉사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해가 갈수록 스케줄은 빠듯해지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
9월의 첫날 한국에 도착한 조수미는 기자회견으로 일정을 시작해 야외 음악회인 '파크콘서트'에 섰으며, MBC 에 출연해 예능감을 뽐냈는가 하면 삼척문화예술회관과 울산 KBS홀에서 렉처 콘서트로 성악가를 꿈꾸는 아이들을 만났다.
이번 내한의 중요 이벤트는 9월 14~15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파크콘서트'.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야외무대에 종종 서온 조수미는, 고국에서 비슷한 취지의 음악회에 다시 서게 된 것에 대해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런던이나 뉴욕 등 미국, 유럽 도시에는 공원에서 파크콘서트를 많이 해요. 음악만 듣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끼리 풀밭에 앉아서 먹고 마시면서 즐길 수 있는 공연이거든요. 한국에서도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마련한다는 것에 대해 의미 있게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과 음악 나누고 싶어
사실 성악가에게 야외 공연은 그리 환영할 만한 무대는 아니다. 그녀는 "평소 아침 8시에 일어나서 발성만 생각하고 사는 몸이 악기인 사람들에게 큰 스타디움이나 공원 콘서트는 좋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수미는 파크콘서트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오페라 공연도 마다하고 한국으로 달려왔을 정도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오페라 앨범(음반에서 그녀는 아달지사를 맡았다) 발매 이후에 열리는 공연이라 잘츠부르크에서도 그녀가 꼭 필요했을 터.
"개인적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선택할 수 있는 위치라서 꼭 하고 싶은 것을 해요. 음반 가 발매된 지 얼마 안 돼 잘츠부르크에서의 공연도 중요하지만, 저는 국내 무대가 제일 소중하고 중요해요. 단지 내 나라이고 어머니가 계셔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국내 팬들을 아끼고, 국내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매번 한국에 올 때마다 더 많은 팬들을 위해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요."
파크콘서트에서 조수미는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뮤지컬, 가요, 민요까지 다양하게 소화해냈다. 추석을 5일 앞두고 열린 공연이니, 조수미가 건네는 '명절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많은 관객이 자연과 함께 음악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구성한 프로그램으로, 이는 조수미가 추구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소통하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클래식 음악을 까다롭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파크콘서트처럼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들도 클래식을 접하게 되고, 다른 음악의 교류를 통해 섞여갈 수 있는 거죠."
조수미는 "바흐나 드뷔시도 중요하지만, 대중이 사랑하는 노래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다면, 저를 조금 낮춘다고 해도 전혀 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해외에서는 평소보다 중요한 역사적인 공연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제게 더 중요한 것은 대중에 눈높이를 맞추는 거예요. 모든 아티스트가 배워야 하는, 나눔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수미에게 음악에 대한 편견은 없다. 대신, 오페라 아리아와 예술가곡, 그리도 재즈, 가요, 민요 등 다양한 장르를 여러 색깔로 표현하는 데 관심을 둘 뿐이다.
"예전에 불렀던 '나 가거든'(드라마 OST)을 들어보면, 성악가의 목소리가 전혀 안 나요. 앞으로 제 여정이 그럴 것 같아요. 노래할 때 악보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내 컬러가 살아 있는가도 중요해요."
조수미는 요즘 아이돌 음악에 대해서도 마음이 열려 있다. 고급음악, 대중음악에 대한 차별을 경계한다. 특히 아이돌 음악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
"K팝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요즘 아이돌 음악은 정말 '쓸 데 있는' 음악이에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 아이돌 음악을 들으며 운동하는데, 그 음악은 제게 많은 에너지를 줘요. 아티스트라면 젊은이들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해요. 클래식 아티스트라 할지라도 대중을 끌어모으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거든요."
늘 준비되어 있어야 자신감 생겨
1986년 베르디 오페라 의 '질다' 역으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조수미는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으로부터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로부터 27년이 흘렀다.
"벌써 27년이나 됐나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제 영역에서는 톱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요. 유럽 무대에서 프리마 돈나로서 위치를 지킨다는 게 정말 쉽지 않거든요."
목이 악기인 성악가에게는 몸 관리가 우선이다. 조수미는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을 정도로, 목 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
"(목은) 가장 상하기 쉬운 악기예요. 감기는 성악가들에게 치명적이고요. 뮤지컬 제의를 받고 당황했던 이유가, 성악과 대중음악은 발성과 호흡이 달라요. 성악 하는 사람들은 호흡이나 발성을 잘못하면, 또 자신의 음역과 맞지 않는 역을 맡으면 하루아침에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지요."
작은 일 때문에 큰일을 그르칠 수 없는 법. 조수미는 "예스보다 노를 많이 했다"고 고백한다.
"아무리 유명한 레코딩 회사에서 녹음 제의가 와도 제 목소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역은 맡지 않았어요."
조수미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청중을 만난다.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누구도 이기지 못할 정도. 그 비결로 그녀는 '준비'를 꼽았다.
"자신감은 필요하다고 생기는 건 아니에요. 철저한 준비 후에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연습을 많이 해도 무대에서 떨리기 마련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면, 노래를 잘하는 건 기본이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사랑이 필요한 것 같아요. 관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연구해서 조명부터 게스트까지 생각하죠. 잠을 못 잘 정도예요. 저는 연주자고, 최고의 공연을 보여줘야 하는 의무가 있거든요."
'조수미' 하면 떠올리는 또 하나의 단어는 '도전'이다. 주어진 배역에 충실하며 원하는 음악을 표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음악의 바운더리를 넓히며 살아왔다.
"제가 잘하는 '밤의 여왕'만 해도 돈 많이 벌고 편해요. 그런데 저는 싫증을 잘 느끼는 성격이라 새로운 음악, 새로운 아티스트가 좋아요. 도전 정신은 타고난 것 같아요. 이것이 제가 30년 전 오페라 본고장에서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명성, 돈 같은 건 하나도 필요 없어요. 아티스트는 늘 공부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호기심 있게 바라봐야 해요. 운도 많이 작용해야 하고요. 그래서 저는 늘 감사하게 살려고 해요."
조수미는 지난 6월 26일에는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7개 국어로 된 다양한 예술 가곡을 선보였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청중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대중음악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제 음악을 안하는 건 아니에요. 파리에서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한국어, 영어로 된 곡을 선보였는데 상당히 반응이 좋았어요. 그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죠. 파리지앵의 기립 박수를 받았을 때는 굉장히 보람을 느꼈답니다."
조수미는 지난 7월 이탈리아의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함께한 오페라 음반 (데카)를 발매했다. 조수미가 드루이드의 여승 아달지사로 분한 이 음반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큰 반향을 얻고 있다.
"최선을 다한 음반이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녹음이 그래미 어워드에서 상을 받는 게 바람이에요. 언젠가 제 목소리가 더욱 풍성해지고 인간적인 경험을 노래에 실을 수 있을 때, 그때는 아달지사가 아닌 주인공 노르마로 무대에 서보고 싶어요."
프리마 돈나와 아이돌 가수의 만남
파크콘서트에 선 조수미·양요섭
지난 9월 14~16일에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파크콘서트 공연에 조수미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남성 중창단 로티니 등과 올랐다. 깜짝 게스트가 한 명 더 있었다.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양요섭이다. 두 사람은 무대에서 ‘사람, 사랑’을 함께 불렀다.
비스트 양요섭을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튜브를 통해 양요섭 씨가 에 나와 '엄마'를 부르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직접 알지는 못했지만, 생각이나 개념이 순수하고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아이돌이라고 판단했죠. 음악뿐 아니라 제가 추구하는 성실한 아티스트의 모습을 갖고 있어서 원했는데 쉽지는 않았어요. 바쁜 그룹이라서요. 호호호. 소원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무대에서는 두 분이 어떤 곡을 부를 예정인가요?
이번 무대에서는 '사람, 사랑'을 같이 부를 예정인데, 어떻게 보면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결국 엮어질 것이라는 내용을 음악과 사랑에 담았죠. 요섭 씨에게 '엄마'도 불러달라고 했어요.
요섭 씨에게도 좋은 무대가 되겠군요.
양요섭 씨가 언젠가는 독립할 것이기 때문에, 솔리스트로 서는 데는 경험이 필요하고 중요해요. 이번 무대가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처음 조수미 씨에게 듀엣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요?
사실 얼떨떨했어요. 이런 굉장한 콘서트에 초대받아 영광입니다. 세계적인 거장 사이에 아이돌이 웬 말이냐,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런 생각이 안 들 수 있게 더 열심히 준비했어요. 저도 실감을 많이 못 했는데, 주위에서 많이 부러워하더군요. "비스트가 아닌 너 혼자 가냐"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비스트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임할 각오예요.
그동안 클래식도 즐겨 들었나요?
클래식을 즐겨 듣지는 않았어요. 다만 아이돌 음악은 귀를 지치게 하는 게 있어서 클래식도 가끔 듣기도 하고, 여러 가지 장르를 골고루 들으려고 해요. 잘 안 되지만 이번 기회에 많은 장르를 들으려고요.
이번 무대에서 무엇을 기대하나요?
파크콘서트는 제게 공연이라기보다 공부가 될 것 같아요.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대기실이 아닌 객석에서 공연을 보고 싶을 정도예요. 음악을 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무대에 서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이번 공연이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조수미 선생님께 많이 배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