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왔어요. 언덕 나타날 때마다 힘을, 다리에 힘을 꽉 줬어요."

29일 오전 서울 도심을 자전거로 달린 고진우(16)군은 종착지인 반포한강공원에 도착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말했다. 옆에서 풀린 다리를 주무르던 김아라(여·26)씨는 "힘들긴 했지만 한강을 보면서 달리니까 다리 아픈 것도 잊었어요"라고 말했다.

29일 새벽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2013 서울 걷·자 페스티벌'에 참가한 이들은 자폐인 가족 동호회인 '불새' 회원이다(본지 9월 16일자 A11면). 2003년 창립된 불새는 자폐인들이 부모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임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광화문광장을 찾았다는 장인순(53)·윤선덕(23)씨 모자(母子)는 "새벽부터 일찍 일어났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다"며 자전거에 올랐다.

29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자폐인 가족 동호회 ‘불새’ 회원들.

이날 가을비 속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한 불새 회원은 29명이었다. 불새 회원들은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서초3동사거리 반환점을 돌아 반포한강공원까지 이르는 15km 코스를 2열로 달렸다. 어머니들은 자전거를 타고 달린 한 시간 내내 아이들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했다.

강남성모병원을 지나 서초경찰서로 올라가는 급경사에선 불새들의 대열이 흐트러지기도 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일부 아이들의 핸들이 맥없이 흔들리자 "얘들아,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엄마가 뒤에 있다"며 힘을 불어 넣었다. '불새' 회장 박효임(55)씨는 "이렇게 큰 행사에 참가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정상인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회사 단위 참가자들도 많았다.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의 직원 58명은 이날 새벽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행사에 참가했다. 블랙야크는 이날 행사 참가자들에게 할인 쿠폰을 배포하기도 했다. 블랙야크 남윤주 팀장은 "평소 직원들과 삼삼오오 모여 걷기 대회 같은 아웃도어 활동을 많이 했는데, 이번 행사는 도심에서 열려 더욱 특별했다"며 "차로 자주 오가던 남산 3호터널을 걸어서 건너보니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는 직원이 많았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임직원과 가족 100여명도 서울 도심을 걸었다. 우리은행 노홍길 차장은 "회사 바로 앞 차도를 직접 걸어서 지나갈 수 있는 행사라 직원들의 관심이 많았다"며 "다음번에는 더 많은 직원이 동참할 것"이라고 했다. 파리크라상의 직원 10여명도 이번 행사에 동참했고, 시민에게 빵을 나눠주는 행사를 벌였다.

이번 행사에 단체로 참가한 아웃도어 브랜드‘블랙야크’직원들은“남산 3호터널을 직접 걸어서 지나가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허준(87) 할아버지는 이날 행사의 최고 연장자였다. 인천대교 개통 기념 걷기 대회 등 지난 1989년부터 걷기 대회만 40여 차례 이상 참가한 걷기 마니아(mania)다. 허 할아버지는 2008년 위암이 발병해서 수술을 받았지만 평소 걷기로 다져 둔 건강 탓에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허 할아버지는 이날 선두에 서서 87세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7.6㎞ 코스를 걸었다.

형제·자매·아들·손자손녀까지 총 12명의 대가족이 참가한 팀도 있었다. 철인3종 경기 참가, 춘천마라톤 풀코스 3회 완주 등의 경력을 자랑하는 '철인 엄마' 송우영(여·65)씨의 가족이 주인공이다. 송씨는 "동생·아들·조카·손자손녀까지 이끌고 서울 시내를 걸어보니 새로운 운동의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협찬: 우리은행·블랙야크·파리바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