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지난 19일(현지시각) 예상을 깨고 지금의 양적완화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한 후, 곧바로 '10월 축소설'이 고개들기 시작했다. 연준 내에서도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20일 '10월 축소 가능성'을 꺼낸 데 이어, 이날 뉴욕 연방준비은행도 다음 주부터 역리포(Reverse repo)를 시범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역(逆)리포'란 연준이 보유한 채권을 금융기관에 팔아 시중의 돈을 흡수하는 것으로 양적완화의 반대 조치에 해당한다.
우려했던 '양적완화 9월 축소설'이 퇴장하면서 시장이 열광하기 무섭게, 곧바로 연준이 축소 카드를 꺼내 보이면서 급등했던 주식, 국채 등 자산 가격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 계속 불씨 지피는 연준, 다음 주부터는 시중 자금 빨아들인다
연준은 지난 19일 정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내놓은 발표문에서 매달 850억달러어치의 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양적완화의 규모를 당분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연준의 예상 밖 결정에 시장 참가자들은 환호했다. 이날 미국, 유럽 등 주요국 증시는 급등했고, 국채 금리는 크게 떨어졌다 (채권가격 상승).
그전에도 연준이 9월에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9월 축소’가 유력했다. 주요 투자은행 등 상당수 시장 참가자들은 ▲10월은 차기 연준의장 지명 일정과 겹쳐 정치적인 부담이 있고 ▲최근 통화정책의 기준점인 미국 실업률이 7.3%로 떨어졌으며 ▲버냉키 의장이 연말(later this year)에 축소하겠다고 언급했다는 점을 근거로 ‘9월 축소설’을 퍼뜨렸다.
하지만 정작 연준으로부터 양적완화를 유지한다는 내용의 발표가 나오면서 양적완화 축소 의지는 물러난 듯 보였다. 하지만 연준의 통화정책을 정하는 FOMC에서 투표권을 가진 불라드 총재는 바로 다음 날 양적완화 축소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불라드 총재는 지난 20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경제전망의 불확실성 바꿔줄 만한 지표가 일부 나와준다면 10월 회의에서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소규모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기로 이미 대부분 의견이 좁혀졌다”며 “이번 결정은 일부 경제지표가 부진한 것 때문에 경계 선상에서 아슬아슬하게 내려졌다”고 강조했다.
이날 밤 뉴욕 연방준비은행도 거들었다. 뉴욕 연준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이르면 오는 23일부터 역리포(Reverse repo)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역(逆)리포는 돈을 마구 풀어대는 양적완화의 반대 개념이다. 이를 두고 연준이 통화정책 기조를 바꾸기 전에 미리 시장에 예고편을 날리는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뉴욕 연준은 이날 성명서에서 “이번 시범조치는 과거 시행했던 공개시작조작 규모보다 다소 커질 수 있다”며 “최소한 몇 주 동안 이어질 이번 테스트를 통해 대규모 거래에 따른 자금 흐름에 대한 경험과 정보를 쌓고, 연준 재무제표 규모와 무관하게 시장 금리 조절 능력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연준이 하루 만에 양적완화 축소의 불씨를 다시 지피자 열광했던 시장은 다시 가라앉았다. 지난 20일 미국의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185.46포인트(1.18%) 하락했고, S&P500지수도 12.43포인트(0.72%) 떨어졌다. 인도 센섹스지수도 382.92포인트(1.85%), 닛케이지수도 23.76포인트(0.16%) 떨어졌다.
◆ 10월? 12월?…“버냉키 신호 헷갈린다” 비판 쏟아져
앞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정해진 시간표는 없지만 연준의 예상대로라면 연내에 움직일 수 있다”며 3개월 안에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겠다는 힌트만 줬다. 이로써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시기는 다시 미궁에 빠지는 모양새였다. ‘9월 축소’를 유력하게 점쳤던 시장 참가자들의 전망은 10월설과 12월설로 나뉘는 분위기다. 심지어 양적완화 축소 시기가 내년으로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쯤 되자 연준이 모호한 신호를 남발해 시장을 교란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까지 터져 나온다. 가령, 버냉키 의장은 지난 6월 ‘미국 경기가 연준의 예상대로 회복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반기쯤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겠다고 했지만, 지난 19일 “경기 전망치가 6월에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연준이 미국 경기의 회복 속도가 예상 궤도에 접어들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양적완화 규모는 줄이지 않아 혼란을 낳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폴 에델스타인 IHS글로벌인사이트 연구위원은 지난 21일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버냉키 의장은 6월에 발표한 로드맵을 이날 완전히 뒤집었다”고 지적했다. 에릭 그린 TD증권 선임연구위원도 “연준의 이날 결정으로 양적완화 축소의 신호탄을 터뜨릴 수 있는 기준점이 더 높아진 꼴이 됐다”며 “이로써 양적완화 축소가 이뤄지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리처드 번스타인 캐피털의 최고경영자(CEO) 역시 지난 20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FRB는 경기 주기를 단 한 번도 앞서간 적이 없으며 늘 한 발씩 늦다”고 혹평했다.
데이빗 도일 맥쿼리 증권 투자전략연구위원은 “내년 1분기 이후부터 양적완화 축소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시장 참가자들의 전반적인 시각도 양적완화 축소 시작 시기가 10월보다는 12월로 쏠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