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이기는 건 더 큰 욕심이라고 말한다. 돈을 벌려면 땀을 흘리는 게 아니라 남의 땀을 훔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빼앗기 위해 굶주린다. 그의 부리부리한 눈에 실내 장식이 비쳐 황금처럼 번뜩였다. 배우 고수(35)였다. 그는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 대기업 성진그룹을 집어삼키려는 야심가, 장태주로 두 달간 살았다. “근데요, 저 별로 욕심 없어요.” 그가 입을 열었다.

그가 연기한 드라마 속 장태주는 서울 신림동 판자촌에서 태어나 강제 철거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이를 갈았다. 말 한마디로 사람과 세상을 쥐고 흔드는 힘, 거기에 닿고 싶었고 끝내 닿았다. 그는 멈추지 않고 폭주한다. "태주는 욕심이 많아요. 강자에게 자기 속을 숨기느라 감정의 기복도 심하죠. 저랑 워낙 성격이 달라 캐릭터 잡는 데 힘들었어요." 고수는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듯 허공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그는 말수가 적었다. 말투는 아직 장태주였다. "어린 시절 장군이 꿈이었다"는 고백처럼 '다나까'도 툭툭 튀어나왔다. 하나를 물어보면 골똘히 질문을 되뇌었다. 그에게 '욕심'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한참 "욕심…욕심…"을 웅얼거리다 말했다. "어릴 땐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답은 없었어요. '지금 하는 거나 열심히 하자'가 최선이었죠. 제 욕심은 소박해요. 지금 제 주변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아니까요."

그는 일주일에 한 번 혼자 산에 간다. 작년에 결혼했지만, 여전히 산행은 혼자다. "산에 오르면 자연히 몸이 숙여지죠. 땅만 보고 아무 생각도 없이 걷는 거예요. 누가 '제일 행복한 순간'을 묻는다면, 전 '헤드폰 끼고 등산하는 순간'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도 '봉우리'(김민기·1992)였다. 가사는 이렇다.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에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지난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수는 “‘황금의 제국’ 찍으면서 1990년대 도심 재개발, IMF, 2008년 세계 경제위기까지 거쳤다”면서 “이번에 경제·역사 공부 제대로 한 것 같다”며 웃었다.

이번 드라마는 그에게 하나의 봉우리였다. "도전이었어요. 예전 했던 드라마는 주로 사랑 얘기였지만 이번엔 달랐죠. 호흡도 길고요." 그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 뒤, 정략결혼을 하러 떠나는 장면을 떠올렸다. "이런 인생이 가능할까 싶어 대사를 받아들이기도, 태주를 이해하기도 어려웠어요." 그는 이런 드라마는 처음이라고 했다. "야외 촬영도 거의 없고, 세트도 집 아니면 회사예요. 음악 들어갈 데도 별로 없을 만큼 대사로 가득 차 있어요. 처음 대본 받고는 '멘붕(멘털 붕괴)'이었죠." 그의 연기를 보고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를 떠올린 사람이 적지 않다. 그는 "갱 영화를 보면 집단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있잖아요. 어둡고 단호하지만 처량하기도 하죠. 태주에게서 그걸 느끼신 게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물가자리 수(洙), 물 주변엔 사람이 모이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어우러져 살라는 뜻에서 친할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다. “동음이의어가 많아요. 고수란 명사가 제 건 아니지만, 그저 수많은 고수 중에 절 먼저 떠올려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17일 드라마 종영 후 그는 올겨울, 영화 ‘집으로 가는 길’로 돌아온다. “앞으로의 제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어요. 좋은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느릿느릿, 그러나 또박또박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