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에 '시골 의사'가 있다면, 법조계엔 '뚜벅이 변호사'가 있다. 60만부가 팔린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박경철 지음)은 경북 안동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환자들 에피소드를 엮은 책. 지난 4월 출간된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조우성 지음)은 '시골의사…'의 변호사 버전 격이다. 법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35편의 인생 희로애락을 담은 이 책이 5개월 만에 2만부 넘게 팔렸다. 박희연 리더스북 대표는 "지난주에 12쇄를 찍고 독자 초청 파티를 열었다"며 "요즘 같은 불황기에 첫 책이 이 정도 팔린 건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했다.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음에도 자식을 위해 진실을 밝히기를 거부한 아버지, 헤어진 애인에게 사준 명품을 돌려받고 싶어하는 남자, 죽음으로 돌아온 호의(好意)의 대가…. 드라마 같은 인생 이야기에 여고생부터 70대 노인까지 "감동 깊게 읽었다"며 독후감을 보내왔다. 책의 주제는 '경청(傾聽)'과 '공감(共感)'.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조우성(44) 기업분쟁연구소(CDRI) 소장은 "지난 17년간 변호사로 일하면서 깨달은 것이 바로 '경청의 힘'"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소송 당사자가 되는 분들은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입니다. 상처가 곪아서 독한 마음을 먹고 법정까지 오게 된 것이죠. 그런 분들에게 '당신 잘못은 이거다'라고 잘라 말하면 더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럴 수 있죠, 얼마나 힘드셨습니까'라고 말을 건네면 공감이 형성됩니다. 법적 분쟁은 논리가 아니라 결국 감성, 공감의 문제예요."

조우성 변호사는“우리 사회 리더들이 가장 갖춰야 할 덕목이 경청과 공감”이라며“아랫사람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려면 일단 그의 생각을 잘 들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조씨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변호사가 됐다. 법무법인에서 줄곧 일하다 지난 7월 독립했다. 필명 '뚜벅이 변호사'는 쉽게 흔들리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

기업에서 인문학과 법, 협상을 주제로 강의하고, 페이스북에서 무료법률상담을 펼치는 '로케터(lawketer)'. "로이어(lawyer)와 마케터(marketer)를 합성한 신조어죠. 변호사도 이제는 마케팅 전략을 갖춰야 합니다. 제 변호사 수임의 70%가 페이스북을 통해서 들어와요. 제가 올리는 글들을 꾸준히 지켜보다가 메시지로 의뢰를 해오는 분들이 많죠."

10월부터는 경기도 여주교도소에서 재소자를 상대로 인문학 강좌를 열 계획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재범률이 높은 이유는 경제사범이 많아서다. 몇 년간 사회와 단절돼 있다 보니 마음이 급해서 새 일을 시작하려다 더 큰 사고를 치는 것"이라며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침 올해 법무부 중점 사업이 인성교육이라더군요. IT·재무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랑 같이 재능기부(무료 강의)할 분들을 20여명 모았어요. 전국 교정시설에 나가는 보라미 방송에서도 코너를 맡아서 저자 초청 인터뷰, 법률 강의 등을 진행할 겁니다. 경제사범에겐 제빵·제과교육보다 계약서 작성, 투자받을 때 유의사항 같은 법률 지식이 더 절실하거든요. 출소 후 인생 두 번째 기회를 날리지 않게 돕자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