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국회에서 제정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정기국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 법안에 대한 경제계의 우려에 정부는 업계 입장을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자 법안을 심사했던 정치권이 곧바로 반발하는 모양새다.
화평법을 발의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9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득권을 갖고 있는 일부 산업계의 반발이 마치 우리나라 화학산업계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호도해선 안 된다"며 "원안보다 대폭 완화된 법안을 지금 와서 더 완화시켜달라는 산업계의 주장을 들어주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전날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중소기업체를 방문해 화평법 수정 의사를 내비친 데 따른 반응이다.
◆ 화평법이 뭐길래…뒤늦게 논란 이유는?
화평법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미 불산유출 사고 등 화학물질안전사고 이후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제정됐다. 화장품과 생활용품 등의 성분에 대해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이 맡았던 생활화학용품 안전관리 업무도 환경부로 이관토록 했다. 또 세정제, 방향제, 접착제, 광택제, 탈취제 등 기존 관리되던 품목에 스티커 제거제, 표면보호 코팅제, 문신용 염료, 소독제 등이 추가됐다. 최근 문신용 염료에서 발암의심물질이 유럽연합(EU) 허용치보다 1320배 넘게 검출됐어도 뾰족한 대책이 없었지만, 법이 시행되면 위해성 검사를 받아 사용할 수 없어진다.
논란은 법안이 통과된지 4개월 만에 재점화됐다. 법안 통과 당시 과징금 때문에 업계의 관심이 온통 화학물질관리법에 쏠렸던 탓에 화평법에 대해선 뒤늦게 문제가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화평법이 업계 생산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서를 환경부·산업부 등에 전달했다. 환경부는 산업계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화평법 하위법령 협의체'를 구성해 지난 3일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 "화평법으로 기업 위태" vs "사실 호도"
화평법에서 가장 첨예하게 논란이 되는 부분은 '소량 면제' 조항을 없앤 것이다. 화평법이 시행되면 물량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신규 화학물질을 등록해야 한다. 이 경우 등록에 통상 9개월에서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기간 만큼 혁신 자체가 늦어진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새로운 제품과 공정을 개선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개발하는 물질조차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등록절차를 밟게 되면 우리 연구개발(R&D)은 경쟁국에 비해 그만큼 늦어진다는 것이다.
또 연간 사용량이 10t을 넘길 경우 물질당 평균 5700만∼1억1200만원이 든다고 등록 비용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대다수의 중소기업이 모든 물질을 등록하기 위해 연간 수십억원을 지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또 실험 인프라가 부족한 기업은 해외 기업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실험 데이터를 구매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심 의원 측은 면제조항을 삭제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화평법에는 전량 수출하기 위해 연간 10t이하로 제조·수입되는 화학물질 등은 향후 대통령령으로 따로 정해 환경부장관이 확인하면 등록을 면제한다. 해당 물질은 일부 등록 자료도 제출을 면제해 준다. 물질 안정성이 크거나 일부 제한된 용도로만 사용되는 등 위해성이 낮은 경우에도 등록을 면제해준다. 비용도 과장됐다는 주장이다.
또 등록에 필요한 시간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도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화평법은 13조를 통해 심사·평가와 상관없이 등록여부만 통지받으면 제조·수입 가능하다고 돼 있다. 등록여부는 등록 신청을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결정·통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즉 한 달이면 화학물질을 수입·제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심 의원은 "400여 명의 피해자가 접수됐고, 이 중 127명이 사망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교훈을 산업계에서 찾아볼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재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