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아내 구카이라이와 그의 수하 왕리쥔 전 충칭시 공안국장(오른쪽). photo 웨이보

“왕리쥔(王立軍)은 구카이라이(谷開來)를 남몰래 사랑했다. 감정이 뒤엉켜버렸고, 벗어날 수 없었다. 구카이라이에게 고백까지 했다. 이(고백)는 왕이 구카이라이에게 편지를 쓸 때 쓴 것이다. 심지어 왕은 자기 뺨을 8번이나 후려쳤다. 구카이라이는 ‘당신(왕리쥔)은 정상이 아니다’고 했다. 이에 왕은 ‘나는 과거에 정상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정상이다’고 말했다.

그때 예상치 못하게 내(보시라이)가 등장했다. 나는 그 물건(편지)을 가지고 떠나버렸다. 왕은 나의 성격을 안다. 왕은 나의 가정을 침해했다. 나의 기본적인 감정을 침해했다. 이것이 진짜 왕이 (미국 총영사관으로) 도망친 원인이다. 왕리쥔은 지금 물타기를 통해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왕리쥔을 핍박해 떠나보내려는 의도가 없었다. 한 주먹을 날린다고 해서 반역자가 되나?

지금 사실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왕이 몰래 구카이라이에게 썼다가 내가 들고 가 버린 편지 안에서 ‘(구)카이라이를 남몰래 사랑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 ‘감정이 뒤엉켜버렸고, 거기에 깊이 빠져버려,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고도 했다. 아마도 이것이 왕이 망명한 중요 원인일 것이다.”

이상은 지난 8월 26일 중국 산동성 지난(濟南)시 중급인민법원에서 보시라이 전 충칭(重慶)시 서기가 행한 법정 최후진술이다. 보시라이의 최후진술로 세기의 재판 국면이 180도 뒤집어졌다. 법정 최후진술로 보시라이는 졸지에 ‘녹색모자(綠帽子)’를 쓴 중국에서 제일 불쌍한 남자가 됐다. ‘녹색모자를 쓰다’란 뜻의 ‘다이뤼마오즈(戴綠帽子)’는 중국에서 금기어로 ‘바람난 아내를 뒀지만 자신만 모르는 남자’를 뜻한다.

최후진술은 효과를 발휘했다. 세간의 관심은 보시라이·구카이라이·왕리쥔 세 명의 삼각관계를 규명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보시라이의 오른팔이었던 왕리쥔(15년형)은 졸지에 보시라이의 연적(戀敵)으로 격상됐다. 현재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는 교통순경복을 입은 왕리쥔과 왕을 향해 웃고 있는 구카이라이의 사진으로 도배됐다.

이번 사건의 줄거리가 아내의 살인으로 실각한 주군과 주군의 아내를 연모한 부하, 아내를 놓고 다투는 주군과 부하를 다룬 치정극으로 바뀐 것이다. ‘보시라이와 왕리쥔’을 삼국지의 ‘동탁과 여포’에 비유하는 얘기도 나온다. 동탁의 수하 여포는 동탁의 여자 초선을 넘보다 들키자 동탁을 배반하고 살해했다.

사실 보시라이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지난 8월 24일 공판에서 보시라이 스스로 자신의 외도를 밝히면서 드러났다. 보시라이는 피고인 진술에서 “당시 내가 외도를 저질렀다. 그녀는 이 사실에 매우 분노를 표했다. 이후 과과(아들)를 데리고 떠났다”고 진술했다. 살인죄로 사형유예가 확정된 아내(구카이라이)와 거리를 두기 위해 자폭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또 지난 8월 22일 1차 공판 때 법원이 전격 공개한 구카이라이의 증언영상에서도 이런 사정이 감지됐다. 11분여 영상에서 구는 차분한 태도로 “아들(보과과) 유학비용 출처를 보시라이가 알 것”이라고 웃으며 증언했다. 당시 “아들(보과과)을 지키기 위해 남편(보시라이)을 버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권력투쟁 삼국지? 치정소설 금병매? 보시라이와 왕리쥔은 삼국지의 동탁과 여포?

다만 이들 부부 사이에 돌연 왕리쥔이 끼어든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 전개다. 또 이는 보시라이의 법정 최후진술 하루 전날인 지난 8월 25일, 왕리쥔이 보시라이와의 대질심문에서 증언한 내용과 완전히 배치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다음은 왕리쥔의 법정증언 내용.

“(지난해) 1월 28일 저녁 5시 이후, 나는 1호루(보시라이 집무실)로 갔다. 확실히 말하지만 나는 이미 보에게 닐 헤이우드가 구카이라이에 의해 살해됐다고 보고했다. 나는 다시 상세하게 (구카이라이가) 어떻게 독(毒)을 탔는지 말했다. 그리고 ‘당신(보시라이) 집의 집사 장샤오쥔(살인공범, 9년형)을 찾아봐라. 그는 현장에 있었다. 그는 당신에게 거짓말을 안 할 것이다’고 했다. 이후 보가 내게 물었다. ‘정말 변호사(구카이라이)가 그랬겠나?’ 나는 ‘그녀가 저지른 짓이다. 본인도 이미 인정했다’고 대답했다. 1월 28일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후 그는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1월 29일 오전 9시30분, 충칭시 위원회 판공청(비서실)으로부터 ‘보의 집무실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분명히 당시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무실에 가니 궈웨이궈(郭維國·충칭시 공안국 부국장)와 우모(吳某·충칭시 부비서장)가 나를 둘러쌌다. 소회의실에 보가 나타났다. 그리고 엄청난 욕을 퍼부었다. 아주 저질스러운 욕으로 3분 정도 이어졌다. 보가 탁자 왼쪽을 빙 둘러 내 앞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주먹을 날려 나의 왼쪽 귀싸대기를 때렸다.

몸이 잠깐 동안 흔들릴 정도였다. 입 주위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봤다. 귀에서도 뭐가 흘러내렸다. 탁자 위의 냅킨을 찾아 피를 닦았다. 나는 다시 ‘이 사실을 직면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보는 다시 물컵을 들어 땅바닥에 내던지며 ‘난 절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1~2분간 욕을 했다. 이때는 이미 30분가량이 지난 뒤였다. 내가 보를 보니 이제 좀 차분해진 듯했다. 나는 ‘(보)시라이 서기 냉정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보는 ‘알겠다’ ‘밖에 나가서 걸으면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당시는 아주 위험했다. 먼저 내가 폭행을 당했다. 내 신변에 있던 수하들과 11·15사건(구카이라이 살인사건) 조사요원(11명)도 실종된 상태였다.”

피고인 보시라이와 증인으로 나온 왕리쥔이 쓰촨성 청두의 미국 영사관 망명을 초래한 원인을 두고 정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보시라이는 “왕리쥔이 구카이라이와의 치정관계가 발각될 것이 두려워 망명을 했다”고 주장한 반면, 왕리쥔은 “보시라이의 폭언과 폭행, 주변 사람들이 실종되며 미국 영사관에 망명했다”고 주장했다. 왕리쥔의 망명원인 규명이 중요한 까닭은 검찰이 적시한 보시라이의 3대 혐의 중 직권남용과 직접 연관돼서다.

피고인과 증인의 진술이 엇갈리며 웨이보 여론도 요동치고 있다. 보시라이 재판은 중국 사법 사상 최초로 법원 웨이보를 통해 생중계됐다. 재판 기록 분량은 모두 15만4000자로, 중국 헌법 자수의 9.3배에 달한다. 5일간 재판에서 보시라이는 모두 356차례 발언했고, 매 3.6회마다 ‘모른다(不知道)’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에 재판 초기에는 “대권 문턱에서 아내(구카이라이)를 잘못 만나 낙마했다”는 동정론이 압도적이었다. “성공하면 왕이 되고 실패하면 도둑이 된다”는 뜻의 ‘성왕패구(成王敗寇)’론이었다. 수뢰와 횡령액이 ‘2679만위안(약 49억원)’에 그친다는 사실도 동정론을 일으켰다. “막강한 지위에 그 정도면 청렴하다”는 것.

하지만 ‘우마오당(五毛黨·관변 댓글부대)’으로 추정되는 인사들은 보시라이의 궤변을 성토하고 있다. 5일간 공판이 마무리되면서 “‘삼국지’에서 ‘금병매’로 변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보시라이의 1심 재판 결과는 9월 중 나올 예정이다. 1심에서 보시라이가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태도로 미뤄봤을 때, 고급법원에 상고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국에서 1심 재판 결과에 불복할 경우 피고인은 1심 결과의 부당성을 2심에 호소할 수 있다. 세기의 재판은 연말까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