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종주국 영국의 8월 마지막 주는 뜨겁다. 축구 선수들의 이적 소식으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방송 뉴스와 주요 신문들은 앞다퉈 각종 소식을 전하며 분위기를 달군다. 이런 분위기가 절정을 향하던 지난 27일(한국 시각) 영국 맨체스터에서 이청용(25·볼턴 원더러스)을 만났다. 이적 가능성을 묻는 첫 질문에 이청용은 "지금 이 순간 볼턴에서 정말 행복하다"며 덧니가 드러날 정도로 활짝 웃었다. 청바지에 라운드 셔츠를 입은 그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지난 24일 잉글랜드 2부 리그 경기에 나선 볼턴 이청용(왼쪽)이 QPR의 조이 바턴과 공을 다투고 있다.

볼턴에서 5년, 얼굴이 되다

볼턴에서 5년. 적응에 애를 먹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맹활약한 초반 2년, 갑작스레 찾아온 큰 부상과 팀의 2부 리그 강등이라는 시련, 그리고 1년에 가까운 공백 끝에 성공적인 복귀까지. 그사이 이청용은 볼턴의 간판이 됐다.

2012년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며 선수단의 얼굴은 대폭 물갈이됐다. 어느덧 이청용은 현재 선수단에서 볼턴 생활을 가장 오래 한 선수 중 하나가 됐다. "처음 올 때는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어요. 갑작스럽게 크게 다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이 팀이 정말 편하고, 모두 가족 같은 분위기라 좋습니다."

올여름 이청용을 원한 팀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볼턴은 "이적료 700만파운드(약 120억원) 밑으로는 어느 팀에도 내줄 수 없다"며 모든 제의를 뿌리쳤다. 한국의 축구 대표팀 에이스가 잉글랜드 2부 리그에서 뛰길 바라지 않는 팬들은 볼턴이 이청용의 발목을 잡는다고 여긴다.

지난 27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만난 이청용은“처음 영국에 왔을 때‘K리그에서 온 선수는 형편없다’는 말이 듣기 싫어 정말 죽을 힘을 다했다”며“이젠 대표팀이나 소속팀에서 골 욕심을 좀 더 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구단으로부터 정말 중요한 사람 대접을 받는 행운은 아무나, 또 축구만 잘한다고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볼턴에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입니다. 요즘 이곳에서 축구 하는 게 참 행복해요. 물론 팀은 언젠가 저를 떠나보내겠죠. 좋게 떠나고 싶습니다. 그래야 또 다른 한국 선수가 볼턴에서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는 공식 훈련이나 행사에 참석할 때면 옷차림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다고 했다. 프로로서 자신을 가꾸며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격 전술의 센트럴 '리'

이청용은 이제 대표팀에서도 중고참에 속한다. 2일 소집되는 대표팀 명단에 이청용보다 A매치 경험이 많은 선수는 골키퍼 정성룡(53경기)과 이근호(52경기)뿐이다. 이청용은 46경기(5골)를 뛰었다. 이제는 "대표팀 내 대화가 부족하다" "한국 축구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3월 카타르전 전후)는 등 꺼내기 어려운 말도 종종 한다.

골과 관련해서도 예전보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욕심을 낼 때가 됐습니다. 대표팀에서도 그렇고 골을 넣어본 지 오래거든요." 축구 대표팀은 홍명보 감독 부임 후 4경기에서 득점이 단 한 골에 그쳤을 정도로 골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이청용은 현 대표팀 선수들 가운데 월드컵 본선에서 골맛을 본 유일한 선수다. 2010 남아공월드컵 아르헨티나전(한국 1대4 패)과 우루과이전(1대2 패)에서 한 골씩 터뜨렸다. 내년 브라질에서 한 골을 보태면 월드컵 본선 아시아선수 최다골 기록(3골)을 보유한 박지성(에인트호번), 안정환(은퇴)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최근 소속팀에서 중앙 공격수로도 나서는 이청용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이청용은 지난 24일 QPR과 벌인 리그 경기에서 처진 스트라이커 역할을 했다. 더기 프리드먼 볼턴 감독은 선취골을 허용하자 이청용에게 더 올라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이청용은 남은 시간 동안 최전방에서 골문을 두드렸다.

볼턴에 온 뒤 중앙에서 공격을 한 건 처음이었다. 그는 "굉장히 재미있었다. 팀에서는 처음 그 자리에서 뛴 것이라 낯설었지만 경기 내용에 만족한다. 좋은 경험이 됐다"고 자평했다. 과거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측면과 중앙 미드필더 자리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박지성 덕에 다양한 공격 전술을 활용하며 리그를 평정했다. 박지성에겐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박지성이 있던 그 자리에 지금 이청용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