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계속되던 지난 2일 서울 강남경찰서 삼성2파출소는 이삿짐센터 직원들로 북적였다. 컴퓨터와 의경용 침대가 차례로 실려나갔고, 파출소 직원 40여명은 약 200m 떨어진 임시 건물로 대피했다. "건물 붕괴가 우려되니 긴급 대피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파출소 건물 천장과 벽면에 거미줄처럼 쳐진 균열 사이로 물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의경들이 건물이 무너질까 봐 밤에 잠을 못 잤다"고 말했다. 파출소와 담 하나를 두고 이웃한 건축 자재 판매업체는 바닥이 꺼진 상태로 계속 영업 중이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 915공구 일대에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의 건물 균열이 무더기로 발생하고 있다. 시공사인 경남기업은 상태가 심각한 건물에 대해 일부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9호선은 서울시 최초의 수익형 민자사업(BTO)으로 건설된 노선으로 총사업비 5조2042억원이 드는 대형 공사다.
본지가 입수한 안전진단보고서는 삼성2파출소에 대해 '건물 침하와 기울어짐 현상이 허용치를 초과했다'는 의견을 냈다. 시설물의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구조물 기울기가 가장 위험한 E단계에서는 긴급 보강이나 철거 등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삼성2파출소는 이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대피 이후 한 달 동안 삼성2파출소는 '유령 파출소'가 돼 있다.
본지 취재팀이 915공구 일대 반경 100m를 조사한 결과 최소 15곳의 건물이 손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시공사에 항의해 보수공사를 받은 건물은 5곳. 그나마 콘크리트로 균열 틈만 메우는 '땜질식 보수공사'였다. 7곳은 시공사에 항의했지만 마땅한 조치를 받지 못했고, 나머지 3곳은 건물 손상 원인도 모른 채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근 빌라 주인 A(51)씨는 "지하철 공사 이후 균열현상이 일어나 시공사와 작업장에 10차례 이상 항의했지만 '지하철 공사 때문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처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본지 취재팀이 다수의 지반·건물 구조 전문가들에게 문의한 결과 균열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대도시 '근접 공사'에서 무리한 발파를 벌였거나 편마암 단층이 분포해 상대적으로 지반이 약한 강남의 지질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지반이 약한 곳에서 구조물을 튼튼히 만들지 않았거나 지하수를 빼내는 과정에서 땅속에 공간이 생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시공사는 이런 상황에서도 2009년부터 연장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경남기업 관계자는 "최근에 우리가 현장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공사 전) 원래 있던 균열도 많을 것"이라며 "현재로선 대대적인 안전 진단을 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발주처인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관계자는 "(파출소) 안전문제에 대한 보고는 받았지만 감리·시공사에서 모든 책임을 지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서울시와 시공사의 대처가 안이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회사 건축구조 전문가는 "건물 기울기가 허용치를 초과할 때까지 건설사에서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고, 또 다른 건설업체의 지반 전문가는 "문제가 감지됐다면 시공사가 직접 돌아다녀서라도 피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당연한데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