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드셔 보시면 알겠지만, 맛이 진짜 없는 것이 사찰 음식입니다. 나보고 음식 못했다 하지 마세요(웃음)."

사찰 음식이 참석자들에게 차려지는 동안 정산 스님이 말문을 열었다. 지난 22일 오후 7시 서울 가회동 '북촌민예관(옛 북촌전통공방)'. 한국 전통음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짚어보는 북촌민예관의 기획 '푸드 아티잔 프로젝트' 제2회다. 이번엔 '진정한 의미의 사찰 음식'을 주제로 삼았다. 사찰 음식 전문가 정산 김연식 스님(서울 인사동 '산촌' 대표)과 노화 방지 연구 권위자인 김영애 차움 국제진료원장이 강연에 나섰다.

사찰음식전문가 정산(왼쪽) 스님과 노화방지연구자 김영애 원장이 사찰음식의 우수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산 스님은 "절에서는 중이 되려면 오욕(五慾)을 버려야 한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가 식욕(食慾)"이라고 했다. 수행 정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 그게 사찰 음식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김영애 원장이 현대의학적 해석을 달았다. "기본적으로 사찰 음식은 소식(小食)이에요. 소식은 지금까지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하는 여러 가지 중에서 유일하게 과학적으로 입증된 요인입니다."

사찰 음식이 인기를 얻으면서 최근엔 '사찰 보양식'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동그란 네모'처럼 형용 모순인 셈. 정산 스님은 "언젠가 삼복더위에 '사찰 보양식'을 취재하러 기자가 왔다. '그런 건 없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역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요즘은 좋은 음식이 너무 많고, 몸이 너무 편해요. 영양을 다 소모하지 못해 축적되면서 병이 생기죠. 그런데 절에서 먹던 대로 먹으면 영양 과잉이 없어지니까 모든 사찰 음식이 보양식이겠다 싶더라고요."

이날 강연 참석자들에게 정산 스님은 송차(松茶)와 산삼병(餠), 미나리 얼음채, 상수리잎 쌈밥, 상추불뚝전 등을 내놓았다. 송차는 솔잎을 발효시켜 약간의 알코올이 든 음료다. 김 원장은 "송진은 항염 살균 효과가 강하다"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에서도 예전부터 솔잎으로 만든 차를 마셨다"고 했다.

22일 북촌 민예관에서 열린 ‘진정한 의미의 사찰 음식’ 강연 참석자들에게 제공된 사찰 음식. 맨 앞부터 시계 방향으로 미나리 얼음채, 산삼병, 상추불뚝전, 각종 나물, 상수리잎 쌈밥.

산삼병은 더덕에 쌀가루를 묻혀 쪄서 꿀을 찍어 먹는다. 미나리 얼음채는 짧게 자른 미나리에 감자 녹말가루를 묻혀 뜨거운 물에 데치고 찬물에 식히기를 다섯 번 반복한다. 상수리잎 쌈밥은 도토리, 팥 따위를 섞은 찰밥을 상수리(도토리) 잎으로 말고 칡덩굴로 묶어서 찐다. 상추불뚝전은 상추 줄기를 방망이로 살짝 두드린 다음, 된장·고추장·밀가루(또는 쌀가루)를 섞어 만든 반죽을 묻혀 기름에 지져낸 전이다.

정산 스님은 "사찰 음식은 쓰거나 떫은 음식"이라고 말했다. "절에선 여름에 상좌(上佐)가 상추불뚝전을 세 번 부쳐주지 않으면 내쫓는다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맛있단 거죠. 그런데 막상 먹어보면 쓰고 맛이 없어요. 다른 음식들이 얼마나 맛이 없으면 그랬겠어요."

김 원장이 이어받았다. "타닌이나 폴리페놀처럼 채소의 쓴맛을 내는 성분들은 일종의 독(毒)입니다. 식물이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거나 동물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서, 또는 침투한 균을 죽이려고 체내에서 만들어낸 겁니다. 인간이 채소를 먹으면 이런 성분들이 항산화(anti-oxidant)·항염증(anti-inflammatory) 작용을 하고 손상된 DNA를 치료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장수 유전자(gene)를 깨워주는 거죠."

스님은 강연 참석자들이 앉은 테이블을 돌면서 "맛이 없죠?"라고 연신 물었다. 참석자들은 "대체 뭐가 맛없다는 건지…"라며 차려진 사찰 음식을 부지런히 입으로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