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록펠러센터의 구두수선업체

뉴욕 월가는 금융의 본산이자 금융인의 무덤이기도 하다. 숱한 사람이 영욕을 맛본다. 1920~30년대 미국 대공황과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런 월가에서 수명을 이어온 직종이 있다. 바로 구두닦이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만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야 했다. 뉴욕타임스(NYT)가 25일(현지 시각) 월가 구두닦이 사업의 변천사를 소개했다.

이곳에서 영업하는 구두닦이업체 중 한 곳은 이름이 '닥터 샤인'이다. 우리 말로 '광내기 박사'쯤 되겠다. 주고객 중 하나가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다. 닥터 샤인의 '박사들'은 매일 블랙스톤의 사무실을 찾아가 직원들 구두에 광을 내준다. 구두닦이가 사무실을 찾아가는 출장 서비스 가격은 6달러. 직원이 회사 로비에 있는 구두닦이 영업장에 찾아가서 닦으면 3달러다. 닥터 샤인의 창업자인 마우리치오 디아스는 10년 전만 해도 자신이 금융인이었다. 투자회사에서 해고 당한 뒤 구두닦이 사업을 차렸다. 이제는 자리를 잡아 '블랙스톤의 VIP'라 불린다.

나이 지긋한 월가 금융인들에게 구두닦이는 각별하다. 예전엔 월가가 규모도 작았다. 일하는 직원도 적었다. 금융인과 구두닦이는 이웃처럼 지냈다. 구두닦이들은 거래소 안팎의 일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금융인도 구두닦이와의 추억을 하나쯤 갖고 있었다.

70년대에 투자회사 로스차일드에 입사한 제임스 던은 NYT에 출근 첫날의 구두닦이 서비스를 회상하며 "따뜻한 환영인사를 받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존 굿프렌드 전 살로몬브라더스 CEO는 "2~3달러만 주면 항상 회사에 찾아오는 구두닦이가 있었다"고 했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직원들도 구두닦이 스탠드에 신발을 올려놓고 동료들과 담소하며 휴식을 즐기던 때를 떠올렸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형이자 금융인이었던 조셉 케네디는 구두닦이 덕분에 1929년 주가가 폭락하기 직전 주식을 팔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구두를 손질하던 구두닦이가 월가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해줘 주가 폭락을 미리 알았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하지만 월가 직원들과 구두닦이의 관계도 대형 금융회사들이 들어서면서 변했다고 NYT는 전했다. 오늘날 JP모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대형 금융회사들은 구두닦이 업체와 일괄 계약을 맺고 직원들 구두를 정기적으로 닦아준다. 값도 싸고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구두닦이는 직원들 구두를 한꺼번에 수거해 가서 손질한 후 돌려준다. 그 동안 직원들은 양말 차림으로 계속 업무를 본다.

금융인들은 바뀐 방식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제임스 던은 구두닦이와 직접 접촉할 일이 없는 새 방식이 "삭막하다"고 했다. "금융회사들이 백화점처럼 변하고 있다"고도 했다.

최근에는 구두닦이업체들이 이런 고객을 상대로 15분짜리 구두닦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금융사 직원들은 구두닦이 가게를 직접 찾아가 구두 손질을 받고 온다. 구두가 반짝이는 광을 되찾는 동안 구두닦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옛날을 회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NY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