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A 초등학교 김모(27) 교사는 지난달 학교 행정실장과 말다툼을 했다. 남학생 3명이 축구공을 갖고 놀다 교실 벽에 걸려 있던 시계를 깨뜨렸는데, 행정실장이 "돈이 없으니 학급운영비로 시계를 사라"고 한 것이다. 김씨는 "학급운영비라야 한 학기 고작 5만원인데 그걸로 시계를 사면 다른 건 어떻게 구입하느냐"고 되받았다. 결국 행정실장은 행정실에 걸려 있던 시계를 떼어 교실에 걸어줬다.
서울 종로구 B 고등학교에서는 얼마 전 교실 벽에 달린 에어컨 전원 버튼을 막았다. 전기료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교사들에게 에어컨 리모컨을 지급해 에어컨 가동을 통제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책상에 의자를 놓고 올라서 천장에 붙어 있는 에어컨 전원을 이쑤시개로 쑤셔 에어컨을 가동시켰다. 학교 측은 "지난 한 해 학교 운영비의 26%를 전기료에 썼는데 올해는 그보다 훨씬 많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무상급식·무상교육·반값등록금 등 교육복지에 예산이 집중 투입되면서 초·중·고교 학교 살림이 전보다 더 빠듯해졌다. 전기료를 감당하지 못해 학생들은 여름엔 푹푹 찌는 교실에서 겨울엔 냉골 교실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다. 쓰레기통·휴지·건전지 살 돈이 없어 교사들이 개인 지갑을 열고, 행정실과 교사들 간 승강이도 벌어진다.
◇체험활동 교통비 내면 동나는 학급운영비
지난달 경기도의 C 초등학교 조모(41)교사는 사비(私費) 3만원을 들여 서예용 붓 여섯 자루를 샀다. 조 교사는 "지역 특성상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많아 교재·교구를 학교에서 사는데, 학급 돈이 부족해 교사 개인 돈을 쓰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의 '2010~2012 지방교육재정 자체보고서'에 따르면 무상급식에 투자하는 금액은 2008년 471억원에서 2011년 1809억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공립학교에 지원하는 예산 가운데 학교운영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8년 62.6%에서 2011년 48.4%로 14.2%포인트 줄었다.
대구의 D 초등학교 교사 김모(37)씨는 "연간 5만원의 학급 운영비가 지원되는데 체험활동 교통비를 내고 나면 끝"이라며 "교실에서 쓰는 휴지를 교사 돈으로 사는 건 대부분의 교사에게 당연한 일이고, 심지어는 학급 시계 건전지도 교사 집에서 가져온다"고 말했다.
예산 부족으로 수업 기자재를 못사니 수업의 질도 낮아진다. 강원도 E 중학교 과학과 김모(56) 교사는 "학교에 준비된 재료가 없어 교과서에 나와 있는 실험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라고 했다.
◇흉물스러운 학교들… 변기 깨지고 천장에서 물 새
지난 19~20일 본지 취재팀이 서울시내 초·중·고교를 취재한 결과 학교 시설의 상태는 참담했다. 서울 영등포구 F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 복도와 체육관, 급식실 등 모든 건물 벽과 천장에서 물이 샜다. 세면대 배관이 고장 나 물이 새어 나와 복도 벽을 따라 흐르고, 벽에 바른 방수액이 흘러내려 창틀을 하얗게 덮었다. 이 학교 교장은 "시교육청은 체육관 바닥 전체를 손봐야 한다지만 3년째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 상황도 비슷했다. 갈라진 벽에 페인트를 발라 가리고, 무너진 외벽에 임시방편으로 철근을 덧대는 정도다. 깨진 유리 창문을 교체할 돈이 없어 방치한 학교도 있었다. 학생들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화장실 시설도 마찬가지다. 서울 양천구 G 초등학교 교장은 왜 깨진 변기를 수리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소소한 것들을 고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지역 학교 건물의 절반(47%)이 지은 지 30년이 넘은 건물이지만, 올해 시설에 투자할 수 있는 예산은 2001년 이후 가장 적다. 지난 2001년 전체 예산의 23.9%(1조46억2000만원)를 시설비에 썼지만, 올해는 6.9%(5365억7100만원)로 줄었다. 전체 예산은 3조 이상(4조2023억7600만원→7조8026억4000만원) 늘어났는데, 시설 예산 비율은 3분의 1로 줄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이런 상황에서 내년에 고교 무상교육하고 반값등록금 제도를 시행하면 학교 상황은 더 열악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