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를 시작하고도 몇 개월 동안 토론 수업이 안 되는 서울대의 현실에 놀랐습니다. 똑똑한 학생들이지만 학기가 끝날 때가 돼서야 겨우 토론이 시작됐죠."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공간경제연구원 사무실. 박삼옥(67) 서울대 명예교수(지리학)가 30년에 걸친 교수 시절을 회상했다. 박 교수는 오는 30일 교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전북 전주의 자립형 사립고인 상산고등학교 교장에 취임한다. 서울대 사회대 학장과 평의원회 의장을 지냈고 세계경제지리학회의 거목으로 이름난 박 교수의 고교 행은 학계에서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박 교수는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토론 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서울대생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보다 더 똑똑한 학생들인데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면서, "부모님 권유로 서울대에 온 후 길을 찾지 못하는 건 엄청난 자원낭비라고 생각했고, 토론 문화 부재 탓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고등학생 때부터 타인과 토론하고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대학교육도 발전하고 창의적 인재들을 길러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방 사립대 총장 제의까지 받았던 박 교수가 고등학교 교장직을 선택한 이유다. "앞으로 리더가 될 유능한 학생들이 우리나라를 이끌고, 혼자 잘나서 앞서가는 게 아니라 타인과 협력하고 상생하도록 하는 교육을 하고 싶었어요. 때마침 들어온 고등학교 교장 제안이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박 교수는 "많은 사람이 평의원회 의장까지 지낸 교수가 왜 고등학교 교장으로 가려 하느냐는 소리를 듣는다"면서, "토론과 협력이 필요한 새로운 시대에 교육자로서의 길이 대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박 교수가 상산고를 택한 이유는 또 있다. "상산고가 있는 전북 지역은 자원이 부족하고 산업 기반이 약한 낙후지역 중 하나입니다. 선진 교육을 통해 경제적 수요를 창출해내고 싶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평생에 걸쳐 연구해온 경제지리학을 현실에 적용해 보겠다는 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