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장기 침체를 논할 때면 늘 함께 따라붙는 화두가 재정긴축 정책이다. 2010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재정위기가 불거졌을 때 유럽연합(EU)이 처방으로 내놓은 게 긴축 정책이었다. 방만한 재정 운용이 주범으로 지목된 결과였다. 각국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적자 개선에 나섰다. 2011년 논의를 거듭해 2012년 체결한 신(新) 재정협약이 대표적 조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을 3%로 맞추지 못하면 자동으로 제재가 이뤄지도록 했다.

대가는 컸다. 공공부문 일자리 감축과 같은 가혹한 조치가 이어지며 반대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치솟는 실업률은 사회 불안을 더했다. 그럼에도 유럽 정책의 주도권을 쥔 독일은 긴축의 기조를 꺾지 않았다. 올해 6월 협약을 통해 재정 적자 목표치 달성 기한을 조금 연장했을 뿐이다.

위기가 불거진 지 3년이 지난 지금, 어느새 유럽 금융 시장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동안 부진했던 경제 성장률에도 모처럼 볕이 들었다. 6분기 연속 마이너스였던 유로존의 경제 성장률이 올해 2분기에는 플러스 성장률로 반등했다. 그동안 고통을 감수하며 추진한 긴축 정책이 효과를 거둔 걸까. 각국 정책 결정자들은 그렇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 긴축 대표주자 네덜란드, 경기 부진에 울상

긴축이 만병통치가 아니라는 사실은 개별 국가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독일과 함께 긴축 정책을 지지해 온 네덜란드는 최근 경기 부진의 늪에 빠졌다. 로이터는 지난 16일 ‘EU 긴축정책의 사도 네덜란드, 경제적 고통을 느끼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네덜란드 상황을 조명했다.

지난 7월 네덜란드에서는 25개 기업이 도산했다. 1981년 이래 한 달 기준으로는 가장 많은 수다. 8월엔 실업률도 사상 최고치인 8.7%까지 올랐다. 올해 2분기 경제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0.2%에 그쳐 부진했다.

올해 네덜란드 정부는 총 460억유로의 정부 지출을 줄이기로 했다. 내년까지는 60억유로의 지출을 더 줄이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정부가 긴축에 긴축을 더하면서 경제 성장은 타격을 입을 거란 전망이 많다. ING와 라보뱅크 등 네덜란드 주요 은행들은 정부의 재정 긴축 때문에 내년엔 경제 성장률이 0%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유로존 주요국 GDP 대비 재정적자비율

◆ 유로존 경제 성장률·실업률은 악화

긴축 정책의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로스타트 통계에 따르면 유로존의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은 2010년 6.4%에서 작년엔 3.7%까지 개선됐다. 아일랜드의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도 2010년 30.8%에 달했지만, 작년엔 7.6%으로 나아졌다.

하지만 잃은 것도 많다. 유로존의 실업률이 올해 7월 기준 12.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리스와 스페인에선 인구의 4분의 1이 실업자 신세다. 경제 성장률도 부진했다. 유로존의 경제 성장률은 2010년 2%에서 작년 마이너스 0.6%로 내려갔다. 유로존 2위 경제국 프랑스의 성장률도 같은 기간 1.7%에서 0%로 나빠졌다.

최근 들어 금융 시장이 안정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긴축 정책의 효과로 해석하는 의견은 많지 않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14일 온라인기사에서 “전문가 사이에서는 유로존의 경제 상황이 나아진 것을 두고 유럽중앙은행(ECB) 덕분이라고 보는 분석이 많다”고 보도했다. ECB가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채권을 무제한으로 사들이는 등 양적 완화를 펴나간 덕분에 지금의 안정을 맞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유로존 주요국 GDP 성장률

◆ 獨 긴축 정책, 완화로 돌아설까…전망은 부정적

이제 유럽 경제의 향배에서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는 주엔진이자 대주주인 독일의 정책 방향이다. 9월 22일 총선을 앞둔 독일이 경기 개선세에 힘입어 긴축 노선을 변경할 것인가. 전망은 다소 부정적이다.

슈피겔은 “총선 후 독일의 긴축에 대한 입장이 완화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쾰른 경제연구소의 마이클 휘테르 소장은 “독일 정부가 최근의 경기 개선을 긴축 정책의 효과라고 주장할 수 있다”며 긴축 정책이 완화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독일 킬(Kiel) 대학 세계경제연구소의 보이센 호그레페 연구원도 “독일의 정책적 입장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