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단어에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숨바꼭질'의 허정 감독은 아파트를 떠올렸다. 1980년대 이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절반 이상이 그렇듯 그도 아파트 이외의 공간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아파트가 갖는 사회적 의미와 그것이 주는 불안을 체득한 이 신인 감독의 첫 작품 배경은 당연히 아파트. 낯선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층수 누르기를 두려워하고, 행여 남들이 도어록 비밀번호라도 알까봐 불안해하는 아파트 거주자들의 행태가 피부에 와닿는다. 그리고 개봉 1주일 만에 261만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며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힘'을 다시 확인시켜줬다.

20일 만난 허 감독에게 "개봉 나흘 만에 손익분기점(160만명)을 넘었다"고 운을 떼자, 그는 "시나리오 쓸 때 가장 힘들었던 게 대중이 좋아할 만한 것과 내가 관심을 갖는 것 사이의 접점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땐 '손익분기점만 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부모와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나와 한 고시원에서 혼자 살게 된 허정 감독은 “얼마전 낯선 사람이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가 찍은 영화의 한 장면이 실제 벌어지는 줄 알고 무서웠다. 알고보니 술에 취한 다른 방 사람이었다”고 했다.

이 영화의 예산은 약 25억원. 주로 TV에서 활동한 손현주와 문정희, 전미선 등이 주인공이다. '영화계 스타'라고 할 만한 등장인물이 없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캐스팅에 대해서는 걱정이나 불만이 없었다. 손현주씨는 예민한 표정을 갖고 있지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한 느낌도 주는 배우다. 제작사나 투자사에서도 다들 반겼다"고 했다. 한정된 제작비 안에서 작업하는 덴 제작자인 김미희 대표의 역할이 컸다. "'좀 더 해도 된다'고 하거나, '그건 더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균형을 잡아줬다"는 것이다.

'숨바꼭질'은 집에 얽힌 각종 괴담(怪談)에서 출발한 영화인데, 개봉 이후 그 괴담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 초인종 옆에 수상한 표시가 발견되었다거나, 남의 집에서 오랫동안 숨어 산 노숙인이 있다는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괴담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허 감독은 "사람들의 불안을 반영한 괴담을 다시 사람들이 무서워한다는 게 흥미롭다"고 했다. "학교의 각종 괴담이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담고 있듯 집에 대한 괴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집에 대해서 떠도는 괴담은 귀신과도 상관없고 상당히 현실적이잖아요. 외부인의 침입에 대한 불안 등이 이런 괴담에 다 반영된 거죠."

집으로 상징된 신분 상승에 대한 병적인 욕구와 다른 계층을 침입자로 간주하는 중산층의 속물성이 부딪치는 지점이 바로 이 영화가 자아내는 공포의 실체다. 집, 그중에서도 고급 아파트로 상징되는 계층 상승 욕망을 둘러싼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부동산 공포 영화'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을까.

허 감독은 "한쪽에선 계층 상승을 원하고, 이미 원하는 것을 가진 계층은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욕망의 순환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위 계층의 침입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라는 평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두려움을 부정적으로 다루려고 했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허 감독에게 집이나 소유물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집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소유욕이 없다곤 말하기 힘들 것 같다"고 쑥스럽게 말하는 그의 손에는 5년 전 나왔을 법한 플립형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