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민간단체 대북 지원 승인… 반응 엇갈리는 이유는

“우리는 한반도 한쪽에서 굶주림과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새 정부는 정치적인 상황과 무관하게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지난 15일, 광복 68주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원칙을 다시금 강조했다. 남북 정치 상황와 상관없이 영유아 등 열악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였다. 지난 7월 29일에는 ‘민족사랑나눔’, ‘섬김’, ‘어린이어깨동무’,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푸른나무’ 등 민간단체 5곳의 대북 지원을 승인했다. 이 중 단체 두 곳에 대해서는 지난 13일, 지원 물품 분배 모니터링을 위한 방북을 허용했다. 현 정부 출범 후 처음 있는 일이다. 14일엔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가 이뤄졌다. 이에 민간단체 대북 지원 실무자들은 “말라붙었던 북한 인도적 지원이 살아날 징조”라며 기대감을 가지면서도, “정부의 진정성을 판단하기엔 시기상조”라는 등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에서는 5세 미만 아동의 27.9%가 만성 영양장애를 앓고 있다. 사단법인 푸른나무의 인도적 지원을 통해 빵을 먹고 있는 사리원 애육원 아이의 모습.

◇MB정부의 인도적 지원 중단…비영리단체 문 닫고, 30만 아동 영양실조로

"고난의 행군 중입니다."

지난 9일 만난 강영식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지난 정부가 인도적 지원마저 중단하면서 전문성을 가진 비영리단체 50%가 문을 닫았고, 그나마 활동하는 단체는 20%에 불과하다"고 했다. 실제로 1995년부터 활발하게 대북 지원 사업을 하던 굿네이버스는 3년 전, 대북지원팀을 해체했다. 전담 인력이 8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1명이 담당하는 수준으로 축소됐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는 지난해 농업·축산·보건의료 분야에서 단 한 건의 물자도 북한에 전달하지 못했다. 2008년 100억원 상당의 물품 지원과 농업개발사업을 했지만, 작년 지원금은 4억원에 불과했다. 무려 96%나 감소한 것이다.

월드비전의 사정은 그나마 낫다. 94년부터 대북지원사업을 시작한 월드비전은 북한 전역에 국수공장 6개를 가동하고, 씨감자 등 농업개발사업을 활발히 진행했지만, 현재는 국제본부를 통해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이주성 월드비전 북한사업팀장은 "한국 전문가들이 직접 방문할 수 없다 보니 이전만큼 농업 기술 이전이 원활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강 운영위원장은 "한국 시민들이 북한을 돕기 위해 후원한 기부금을 정부가 전달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이번에 승인된 5개 단체 품목도 분유와 의약품으로 극히 한정했는데, 식량이 지원되지 않으면 북한 어린이들은 굶어 죽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 중단으로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 상태는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9월, 북한 중앙통계국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5세 미만 아동 170만5000명 중 27.9%인 30만5195명이 만성 영양 장애를 앓고 있고, 이 중 7.2%는 위급한 상황이다. 북한 전체 어린이의 29%가 빈혈에 시달리는 원인도 영양 결핍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847년 아일랜드가 대기근으로 인구의 절반이 감소할 당시 영국이 인도적 지원을 거절하고 오히려 식민지인 아일랜드의 밀을 빼앗았는데, 당시 사건이 아일랜드 국민에겐 몇백 년 동안 큰 상처로 남았다"면서 "이처럼 인도적 지원 문제는 통일 이후에도 남북 간의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시 지원 아닌 지속가능한 개발 지원…통일 완충 지대 역할을 하는 민간단체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무상 지원과 비영리단체의 대북 지원 사업은 큰 틀에서 차이가 난다. 비영리단체 실무자들은 "정부 차원의 대규모 지원은 현장에 일일이 전달됐는지 모니터링이 어렵지만, 민간단체들은 농업·보건·수자원개발 등 기술 이전형 지역개발사업을 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기아대책 대북법인 섬김은 평양락랑섬김인민병원 설립, 수자원개발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명삼 기아대책 대북법인 섬김 사무총장은 "병원 건립 현장에 가보니 우리가 보낸 건축 재료와 장비들을 울타리 쳐놓고, 너트 하나까지 장부에 기록해서 보관하더라"면서 "병원을 지을 때는 한국 건축 기술자들과 함께 건물을 짓고, 완공된 후엔 남한 의료진들이 현장에서 직접 의료장비 사용법과 의술 등 노하우를 북한 의사들에게 전수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모니터링과 효과성 측정 둘 다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기부금이 현장에 전달되지 않는다고 오해했던 후원자들에게 모니터링 방식 및 지원 결과를 세밀하게 전했더니, 매년 북한 후원금이 두 배씩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남북 관계가 얼어붙었을 때 비영리단체들의 인도적 지원은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장성계 굿네이버스 기획실장은 "2004년 남북 장관급 회담이 진통을 겪으면서 10개월간 냉각 상태일 때, 민간인 최초로 북한에 들어갔다"면서 "굿네이버스는 당시 건설했던 제약공장을 가동하는 등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기위해 우리 기술자들의 방북을 요청했고, 이를 북측이 받아들이면서 남북한 긴장을 완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장 실장은 "농업 기술 이전을 위해서는 평양뿐 아니라 북한 시골 지역에도 직접 들어가는데, 우릴 경계했던 북한 주민들이 나중엔 '우리 도와주러 왔소?'라며 친근하게 먼저 말을 건네더라"면서 "민간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은 남북이 서로 이해하는 화합이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다"고도 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신영순 사단법인 푸른나무 공동대표는 "우리가 보낸 장비나 물품을 사용해본 북한 주민들이 중국보다 한국 상품의 질이 훨씬 뛰어난 걸 알고 있고, 다들 '우리 민족 것이 최고'라며 자랑스러워하더라"고 말했다.

지난 7월, 수해로 인해 파괴, 침수된 주택 앞에서 북한 주민이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왼쪽). 농경지 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북한 아이들의 모습.

◇정부-기업-민간단체 파트너십 구축해야

한편 인도적 지원을 위한 정부와 민간 차원의 협력은 2010년부터 중단된 상태다. 2010년부터 국내 민간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액(남북협력기금)은 '0원'을 기록 중이다. 남북협력기금의 대부분을 유니세프 등 외국 단체에 전달해, 이들을 통해 북한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한 금액은 민간단체를 통한 무상지원 액수보다 500억원가량 많다. 신영순 푸른나무 대표는 "우리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기금의 대부분을 외국 단체들에 주고 있다"면서 "같은 핏줄인 국내 민간단체가 아닌 외국인들이 자원 물자들을 북한 주민과 아이들에게 전달하게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정부는 대규모 자금을, 기업은 기술을, 민간단체는 지속적인 개발 사업과 모니터링을 하는 등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정치적 상황에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을 지속한다는 원칙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을 확대 승인할 계획"이라면서 "정부 관계자와 민간단체 실무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토론하는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면 이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