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이 생전에 '라바울 고우타(小唄)'란 일본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증언했다. 태평양전쟁 말기의 군가(軍歌)인데, 지금도 애창하는 일본 노인이 많다. 이런 내용이다.
"안녕, 라바울이여…. 배는 떠나간다, 항구 앞바다로. 사랑스러운 소녀가 흔드는 손수건. 마음으로 울었다…." 일제 항공 기지가 있던 라바울(Rabaul)은 남태평양 최전선이었다. 이런 곳에 살면서 병사를 향해 손수건을 흔들던 '사랑스러운 소녀'는 대체 누구였을까.
최근 신문사 선배의 권유로 읽은 '할아버지들의 제로센(零戰)'이라는 일본 서적에서 그 모습을 본 듯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전투기 조종사의 증언을 모은 책인데, 선배는 잠깐 나오는 라바울의 일본군위안부 이야기가 인상적이라고 했다. '와카마루(若丸)'란 이름의 그녀는 조선 원산(元山) 출신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근로)정신대 모집에 응했다. 군수 공장과 위안 부대를 선택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군인 심부름이나 부엌일, 세탁일을 하는 정도로 알고 위안 부대를 택했다. 사실을 들은 것은 배가 떠난 뒤였다. 놀랐지만 이미 늦었다."
라바울로 끌려간 조선의 여성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2011년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고(故) 박옥련 할머니도 "병원에서 일한다"는 말에 속아 라바울로 끌려갔다. "라바울 육군에 300명, 해군에 200명 조선 여성이 위안부로 배치됐고, 이 중 200명이 수뢰 폭발로 몰사했다"는 일본 군무원의 증언도 있다. 호주의 역사학자는 라바울의 조선과 일본인 위안부를 3000여명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책이 묘사한 '와카마루'의 모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이다. 속아서 왔지만, 그녀는 현실에 순응한다. 한발 더 나아가 "천황 폐하를 위해 병사들의 아내를 대신하기로 결심했다"고 주위에 말한다. 책은 손수건을 흔들던 노래 속 '사랑스러운 소녀'처럼 그녀를 로맨스 대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그녀는 상반된 형태로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삶을 단념한 것이다. "이런 처지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며 폭탄이 쏟아져도 방공호에 숨지 않는다. 그리곤 매일 기도한다. "하나님, 오늘은 제발 폭탄을 맞게 해주세요." 라바울의 위안부들은 "전사하면 종군(從軍) 간호부로서 (전사한 군인들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다"는 교육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책은 덧붙였다.
이 이야기에 증언자의 과장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있다. 사실이라고 해도 세뇌됐거나 어리석은 식민지 여성이라고 치워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식민지의 강요된 현실에 순응하면서 생(生)을 포기하는 모습이 오직 그녀에게만 엿보이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제국에서) 조선의 입지를 위해 죽는다"며 가미카제 자살 공격에 순응한 조선 청년도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식민지 백성이란 이렇게 비극적이다.
한 일본 지식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서로 전쟁을 한 것이니 사과할 필요가 없지만, 싸우지 않고 나라를 빼앗은 한국엔 사과해야 한다. 영혼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모멸적으로 받아들였다. 사과만 받으면, 우리는 싸우지도 못하고 나라, 소녀, 청년을 내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결국 승자(勝者)가 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미 승자가 된 것처럼 우리는 '이기는 길'을 논하지 않는다. 특히 이번 광복절엔 일본의 허물만 말한 것 같다. 그래서 공허하고 위태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