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눈에 이 '과외선생님'은 퍽 괴상했다. 명색이 선생님인데, 늘 러닝셔츠 바람이다. 게다가 굉장히 바빴다. 기름종이에 철필로 뭔가를 열심히 긁적이다가는, 그걸 등사기로 가져가 또 열심히 밀어댔다. 거기서 나온 종이가 아이의 수업 교재가 됐다. "수학 문제가 가득 적혀 있었어요. 그걸 몇분 몇초에 푸는지, 계속 시간을 줄여나가면서 연산 훈련을 했던 기억이 나요.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등사기며 철필, 그리고 선생님의 굵은 땀방울은 지금도 강하게 뇌리에 박혀 있습니다."
한양대 건축학부 노승범(51) 교수가 회고하는 '괴상한 과외선생님'은 강영중(64), 대교그룹 회장이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집안의 가장이 된 스물다섯 살 청년 강영중이 교육사업을 해보겠노라 작심하고 서울 종암동 전셋집에 아이 셋 앉혀 놓고 시작한 게 대교의 첫출발이었다. 그 세 아이 중 하나가 노승범 교수다. "대교 제자 1호인 셈이죠. 과묵하고 성실한 아이였는데, 내 기억에 공부에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어요(웃음).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길 좋아했죠. 결국 종합예술인 건축을 하고 있으니 원하는 길로 잘 간 것 같아요." 노 교수에게 강 회장은 자기주도학습의 '원조' 격이다. "일일이 떠먹여 주지 않으셨어요.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격려하며 기다려주셨지요."
38년 전 스승과 제자가 다시 만난 사연이 재미있다. 제2의 창업을 목표로 대교그룹이 서울 보라매동 사옥의 리노베이션을 단행했는데, 그 설계를 노승범 교수가 맡게 된 것이다. "한국 스카우트 총재다, 세계배드민턴연맹 회장이다 해서 바빴는데, 다 접었습니다. 업이 아니라 직에 연연한 게 아닌가 싶어서.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는 각오로 리노베이션을 계획했는데, 그때 제자 1호인 노 교수가 건축가라는 사실을 떠올린 거죠. 내가 등사기 밀던 시절부터 대교를 본 사람이니 우리 기업의 혼(魂)이 뭔지 알 것 같았어요."
그만큼 노승범 교수의 부담도 컸다. "과외선생님 시절부터 워낙 꼼꼼하셨던 회장님이었는데 설계만은 일절 간섭하지 않으시고 전적으로 맡기신다 하니 책임감이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나 하나의 잘못으로 여러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에 2년 동안 마음고생을 엄청 했지요(웃음)."
노승범 교수는 연필에서 모티브를 딴 대교의 첫 사옥을 책 모양으로 바꿨다. 책을 쌓은 듯한 모양의 설계안이 순탄하게 통과된 것은 아니었다. "서너 가지 설계안을 준비해갔지요. 실무 임원들은 책 외관보다는 일반적인 사옥 설계안을 더 좋아들 하시더라고요. 딱딱하지만 위엄 있어 보이는 전형적인 사옥 말이죠. 그런데 회장님께서 최종적으로 책 모양 설계안을 선택하셔서 그 안목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건축가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클라이언트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죠."
그 덕에 보라매공원 맞은편 고층건물 즐비한 지역에서 대교 사옥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책 혹은 블록을 쌓은 모양새에다 군데군데 원색을 입혀 동심이 읽힌다. 탁 트인 1층에 들어서면 벽면의 거대한 책장이 손님을 맞는다. 조경 울창한 건물 앞마당은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열어놨다. "교육기업의 이미지, 공공성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부모와 아이들이 지나가다 호기심을 갖고 찾아들어 올 수 있게끔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강영중 회장은 새 사옥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세월이 참 빠르죠. 옛날 사옥 건물 로비에는 내 초등학교 은사의 그림을 걸었는데, 이제 내 첫 제자의 작품으로 사옥이 완성됐으니까요. 사람을 키우는 교육사업의 보람이 이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노승범 교수가 클라이언트인 강 회장이 설계안에 제동을 건 딱 한 가지 사안을 들려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직원 식당은 꼭 만들어라, 천장을 높여서 쾌적하게 만들라고 하셨지요. 지하층을 모두 주차장으로 만들려던 원안을 수정해야 했지만 워낙 강력하시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