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샐러리맨 중산층 중심의 증세(增稅)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정부의 세제 개편안에 대해 "서민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인데 서민·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게 하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 방향과 어긋난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 활동이 시작(1월 6일)된 후 만 218일 동안 복지 재원 조달을 위한 세제 개편 방안을 검토해왔다. 국민 부담과 직결되는 그런 개편안을 발표해놓고 불과 나흘 만에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하라'고 지시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날 세금부담 연봉기준점을 올리는 내용의 수정안을 만들어 13일 중 새누리당과의 협의를 거쳐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전히 '증세(增稅) 없는 복지'라는 공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어서 이런 혼선이 또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 대해‘원점 재검토’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당·정·청(黨·政·靑)의 정책 조정 과정에 큰 문제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 오른쪽부터 현오석 경제부총리,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번 개편안은 우리 세제의 비정상적 부분을 정상화하려고 한 것"이라며 "이런 취지에도 불구하고 오해가 있거나 국민에게 좀 더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는 사안에 대해선 정부가 사실을 제대로 알리고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적극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이번 개편은) 저소득층은 세금이 줄고 고소득층은 세 부담이 상당히 늘어나는 등 과세 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해 개편 방향 자체는 옳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박 대통령은 이어 "아직 국회 논의 과정이 남아 있고,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도 충분히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당과 국회와도 적극 협의하고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발언에 대해 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대통령이 언제까지 '구경꾼 정치'를 하듯 유체 이탈 화법을 반복할 것인지 유감스럽다"고 했다. 여당에서도 "세제 개편 상황의 종합 보고를 받고 방향을 정한 것은 청와대였을 텐데…"라는 반응이었다. 또 정부와 여당의 정책 입안자들은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이번 조치에 담긴 내용 정도를 원점 재검토하라고 한다면 대통령의 복지 공약을 이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도 했다.

한편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는 민심의 분노에 대한 대국민 항복 선언"이라며 "현오석 경제부총리,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등 현 정부 경제 라인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경제 라인 문책론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