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숙선 명창은 “해외 공연을 통해 우리 소리가 만국공통어처럼 세계인에게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듣고 제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에게 주는 게 아니라 우리 전통 음악과 소리에 주시는 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올해 만해대상 문예부문 수상자 안숙선(安淑善·64·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 명창은 "어깨는 더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한없이 기쁘다"고 했다. 11일 오전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만난 안 명창은 "우리 소리가 대중들이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 이번 만해대상 수상으로 우리 전통 음악의 가치와 발전 가능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안 명창은 전북 남원의 국악 명문가 출신. 아홉 살 때부터 가야금과 판소리 명인들에게서 배우며 얻은 별명이 '남원의 아기 명창'이었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들어간 뒤로는 춘향과 심청 역을 도맡으며 '영원한 춘향', '국악계의 프리마돈나' 같은 별명도 얻었다.

한 번 들으면 좀체 잊지 않는 '인간 녹음기'이자, 앉으나 서나 종일 소리를 입에서 떼지 않는 '연습벌레'로도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93), 프랑스 문화부 예술문화훈장(1998), 옥관문화훈장(1999) 등을 받았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단장,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 위원장 등도 지냈다.

안 명창은 유럽 7개국 12개 도시 순회공연, 미주 7개국 순회공연, 에든버러 축제 춘향가 완창 등 해외 공연을 통해 우리 소리를 세계에 알린 '원조 한류 전도사'이기도 하다. 안 명창은 "폭설이 쏟아진 스웨덴 공연장에서 춘향가를 2시간 반 동안 들은 관객 수백명이 기립박수를 보내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제대로 된 통역도 없었는데, 슬픔이나 기쁨 같은 감정, '젊고 아리따운 여성' '어머니' '권력자' 같은 인물 표현까지 다 이해됐다고 하더군요. 우리 소리가 만국 공통어처럼 세계인에게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지요."

안 명창은 "젊었을 때는 힘만 갖고 소리를 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갈수록 소리가 더 무서워진다"고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의 이치는 조금씩 더 알아가는데, 그에 걸맞은 깊이와 메시지를 갖춘 소리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겨요. 가만히 있으면 깨달아지지 않으니까,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으려 노력합니다."

안 명창은 또 "후학을 기르다 보니 스승들이 내게 하셨던 것처럼 '소리를 허투루 하지 마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며 웃었다. "당장 스타가 되지 않아도, 남과 다른 소질을 타고나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후배들도 보물을 품고 살도록 선택받았다 여기고 감사하며 우리 전통음악을 지켜나가 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