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창조경제의 가속화를 위해 박근혜 정부는 하반기부터 민관 협업 체계를 대폭 강화할 태세다. 굳이 창조경제가 아니더라도 관·산·학(官産學) 협력은 현대사회의 핵심 동력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 정부와 산업체, 학계 사이의 제도화된 상호 협력을 통하여 세계 최대 과학기술 산업국가로 부상한 것은 1860년대 일이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국가 주도 경제성장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던 1970년대 이후 산학 협동을 강조하지 않았던 정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창조경제와 산학 협력의 결합은 따라서 당연한 정석(定石)이다. 하지만 현행 관·산·학 구조의 획기적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이번 역시 구두선(口頭禪)이나 공염불(空念佛)에 그칠 개연성이 높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산학 협력은 관 주도 '갑을(甲乙)' 관행이 너무나 뚜렷한 게 화근이다. 연구 개발, 창업 지도, 정보 공유, 인력 양성 등을 통해 산학의 자율적 협력을 조용히 지원하기보다는 관(官)이 북 치고 장구 치며 스스로 노래까지 하는 식이다.

마침 지난주 청와대 참모진 개편과 더불어 공직 사회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엄중한 경고가 나오기는 했다. 한편으로는 관료 집단의 부패와 비리를 겨냥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 의지 부재와 소명 의식 실종을 조준한 것이었다. 국무총리 및 장·차관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역대 어느 정부에 비해 관료 출신을 가장 중용(重用)하며 출범한 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이기에, 관료 사회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심사는 참으로 답답하고 갑갑했을 것이다.

지난날 한국의 고도성장과 관련하여 관료제가 수행해 왔던 견인차 역할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호적 서류나 토지대장 따위를 다루던 '서기형(書記型)' 공무원들이 전문 기술 관료로 변신한 것은 박정희 정부가 야심 찬 경제 계획을 주도하면서부터였다. 그들은 주로 고등고시를 통해 충원되었고 그만큼 학력 또한 출중했다. '근대화의 기수'라는 긍지와 열정으로 충만했던 이들은 말하자면 국가의 기간(基幹) 엘리트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성공은 다른 말로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의 승리다.

하지만 바로 그 관료 조직을 더 이상 대한민국의 든든한 미래로 보기는 어렵다. 핵심 권력 자원을 대거 장악한 데다, 능력과 권한의 증대는 필연적으로 국정 전반의 책무까지 자청하는 욕망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예산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다. 의회 감시도 없고 국민 참여도 없는 이른바 '깜깜이' 예산 편성에는 개혁의 낌새조차 없다. 정부 제출 예산안이 국회에서 수정되는 비율은 고작 2~3%다. 공공 정보의 개방과 공유 문제도 다르지 않다. 최근 성대한 '정부 3.0' 비전 선포에 이어서 양해각서(MOU) 체결이 갑자기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정권 초기마다 등장하는 전시성 관가(官街) 풍속의 일환이 아닐지 내심 우려스럽다.

고위 관료들은 지식 측면에서도 최고 전문가를 자부한다. 현재 5급 이상 공무원 다섯 중 하나 이상이 박사이고 석사가 열 중 넷을 넘는다는데, 학비 대부분은 사실 세금이 댔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경제팀을 중심으로 역대 내각 가운데 가방끈이 가장 길다고 한다. 게다가 관료 사회는 이력이나 경력, 학벌 등의 측면에서 대단히 동질적이다. 물론 이러한 조건 자체가 강점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이익 단체 내지 동업자 집단이 될 공산도 다분히 크다.

'관료 공화국'에서 산학 협동은 따라서 겉과 속이 사뭇 다르다. 한국식 산학 협력에서는 정부의 판단과 지원이 결정적이라 기업이나 학계에서 나온 창의나 이견은 상대적으로 공간이 좁다. 현재의 산학 협력은 또한 비공식적 연줄 역할을 고무한다. 가령 초청 강연, 간담회, 세미나라는 이름의 '호텔 학습' 열풍은 친분 형성이나 인맥 관리에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일어날 때가 많다. 관 주도 산학 협동은 학계의 온실화와 학문의 사막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연구비의 정부 의존이 심해지면서 정부의 용역 기관으로 전락한 연구소나 학회가 부지기수다. 퇴임 관료에 대한 전관예우는 관치 산학 협동의 결정판이다. 공기업, 유관 기관, 각종 협회는 물론 지자체나 사기업, 대학까지도 고위 공무원들의 이모작 인생 무대로 곧잘 활용된다.

전통과 관행이 이러하거늘, 창조경제가 기대하는 산학 협동의 최종 성사 여부는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라 관료들의 의중에 달린 사안일지 모른다.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불편한 일을 결코 하지 않는 것은 관료제의 속성이다. 더군다나 그들 나름의 '충정'이나 '애국심'에서 볼 때 5년짜리 시한부 대통령의 백년대계를 믿겠는가, 워낙 민생과는 따로 노는 국회의원들을 믿겠는가. '영혼 없는 관료'라는 비난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말이다. 박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원전 비리를 질타한 것이 지난 5월 이후에만 네 차례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공직 사회는 가타부타 반응도 없고 대응도 없다. 참으로 대한민국 관료의 힘은 은밀하고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