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최태원(53) 회장 형제의 명운(命運)을 쥐게 된 김원홍(52) 전 SK해운 고문은 중국을 거쳐 대만까지 2년여 도피 생활을 하다 7월 31일 대만 북부 지룽(基隆)에서 붙잡혔다. 대만 형사국은 김 전 고문이 수억원대 고급차를 몰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날 친구와 저녁을 먹고 나오는 김 전 고문을 체포했다고 대만 언론이 전했다.

그는 학력과 가족 관계 등 개인사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을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다. 심지어 SK해운 고문이지만 SK그룹 내부에도 사진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최태원 회장은 김 전 고문을 '회장님' '선생님'으로 모시며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최 회장은 김 전 고문에게 경영 전반에 대한 자문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그의 검거 소식에 검찰은 "누가 봐도 (SK가 꾸민) 각본으로 보이지 않느냐"며 발끈했다.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그가 항소심 선고를 코앞에 둔 시점에 붙잡혔다고 하니 검찰이 'SK 공작설'을 제기하는 것이다.

슬리퍼 신은 채… 'SK 막후 실세' 김원홍, 대만서 검거 -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수백억원대 계열사 자금 횡령 사건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김원홍(가운데) 전 SK해운 고문이 지난 31일 대만에서 현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검찰이 의문을 제기하는 핵심은 시점(時點)이다. 이번 사건 항소심 결심 공판은 지난 29일 끝났고 법원 선고는 오는 9일로 예정돼 있었다. 더불어 최태원 회장의 구속 기간 만기는 9월 30일이다. 김 전 고문은 항소심 선고를 불과 10일 앞두고 체포됐는데 검찰은 SK 측이 김 전 고문을 증인으로 신청해 항소심 자체를 흔들려고 한다고 본다.

검찰은 SK 측의 움직임도 의심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SK 측 변호인과 최재원(50) 부회장은 지난달 이미 대만에 다녀왔다. 검찰은 오래전부터 SK 측이 그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본다. 미리 짜놓은 스케줄에 따라 이들이 대만에 가서 시나리오대로 만나 입을 맞춘 것 아니냐는 게 검찰의 의심이다.

검찰은 지난 26일 SK 측이 김 전 고문을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한 것도 일종의 '쇼'라고 보고 있다. 최 회장 측은 김 전 고문과의 관계를 끊을 거라는 뉘앙스를 보여가면서 김 전 고문을 455억원 횡령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말해왔는데, 실제 고소장을 보면 455억원에 대한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이에 SK 측은 김 전 고문이 지금 붙잡힌 것은 순전히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입장이다. SK 측은 "우리는 김 전 고문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이미 최후 변론도 마쳤다"고 말했다. SK 관계자는 "우리는 그분을 데리고 들어올 힘도 능력도 없다"며 "만약 김 전 고문이 들어오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면 이 시점이 아니라 훨씬 일찍 들어오도록 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그가 송환되면 검찰은 수사를 원점부터 다시 하고, 결심까지 마친 항소심 재판도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SK 관계자는 "송환 시기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변론 재개 신청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는 SK가 변론 재개 신청을 내고 김 전 고문을 증인으로 당연히 세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검찰의 고민은 김 전 고문의 체포에만 그치지 않는다. 검찰은 요새 부쩍 "재판부가 최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한다. 공판 과정에서 재판장인 문용선 부장판사가 여러 차례 SK 논리를 두둔하면서 검찰의 수사 내용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