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가 회생 조짐을 보이면서 위험투성이로 취급받던 이 곳 은행들로 다시 자금이 몰리고 있다. 고위험 투자로 꼽히는 은행 후순위채권에 대한 수요도 되살아난 분위기다. 미국 머니마켓펀드(MMF)는 지난달 말까지 최근 1년간 유로존 은행들에 대한 투자 비중을 두 배 가까이 늘렸다. MMF는 은행 예금이나 국공채, 기업어음(CP) 등 단기 금융상품에 주로 투자한다.

◆ 美 MMF, 유로존 은행 투자 비중 늘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29일(현지시각) 올 상반기 말 기준으로 미국의 10개 대형 MMF가 운용자산의 14.5%를 유로존 은행의 단기 예금과 채권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상반기 말에는 이 비중이 8.2%였다. 작년 6월은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유로존 붕괴에 대한 우려가 정점에 달했던 때다.

10개 MMF의 운용자산은 6520억달러(약 726조원)로, 미국 전체 MMF 자산(1조4300억달러)의 46%를 차지한다. 미국 MMF는 유럽 은행들이 단기적으로 달러화를 조달할 수 있는 주요 창구였다. 그러나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가 고조되면서 이들은 대거 돈을 빼갔다.

올 3월에도 유로존 은행들에 대한 미 MMF의 투자 비중은 13.2%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탈리아 선거를 둘러싼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고 키프로스에 대한 구제금융 결정으로 유로존 위기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불붙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유로존 상황에 대한 판단이 다소 나아져 상반기 평균 투자 비중은 15%를 기록했다.

특히 프랑스 은행들로 자금이 몰렸다. 지난달 말까지 1년간 프랑스 은행들에 대한 미 MMF 투자는 255% 가량 늘었다.

마틴 한센 피치 애널리스트는 “미 MMF 자금이 다시 유로존 은행들로 흘러간 건 작년 하반기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매입 프로그램 시행 후 유로존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높아졌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해 7월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이어 그 해 9월, ECB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로존 재정 위기국의 국채를 무제한으로 매입하기로 했다.

◆ 은행 후순위채 발행도 활기

은행들의 후순위채권 발행도 활기를 띠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은행들에 대한 새로운 규제제도가 구체화하고 유로존 위기가 잦아들면서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후순위채에 대한 수요가 다시 살아났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 세계 은행들이 발행한 후순위채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4% 증가했다. 후순위채는 금융회사가 부실로 문 닫게 되면 상환 순위가 뒤로 밀리기 때문에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큰 고위험 상품이다.

이 기간 유럽 은행들의 후순위채 발행액은 152억달러에서 522억달러 240% 넘게 증가했다. 북미 지역 은행들의 후순위채 발행 규모는 900% 이상 증가했다.

무디스는 “신용평가사들은 이제 후순위채의 신용도를 평가할 때 정부 지원 가능성을 배제한다”며 “투자자들도 가격에 위험도가 커진 부분이 반영된 걸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무디스는 유럽 은행들이 발행한 후순위채의 약 3분의 1이 바젤(은행 자본강화 규제안)에서 정한 자본으로 인정될 걸로 추정했다. 은행들이 자기자본 기준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 유럽 은행 신용등급 줄줄이 내려가

하지만 유럽 은행들에 대한 우려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무디스는 지난 2일 스페인 은행 3곳(방키아·카탈루냐방크·NCG방코)의 신용등급을 두 단계씩 내렸다. 모두 국유화된 은행들로, 이미 투자부적격 등급인 상태에서 등급이 더 떨어졌다. 무디스는 “민간 투자자들이 손실을 분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달 초 이탈리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춘 데 이어 지난 24일 이탈리아 은행 18곳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낮췄다. S&P는 이달 초 유럽 대표 은행인 바클레이즈와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체방크의 신용등급도 한 단계씩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