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라는 걸 알고서도 엄마가 이상행동을 하면 '왜 그래! 그러지 마!'라고 소리 지르고 구박도 많이 했어요. 답답한 마음에 그랬는데…. 지금은 너무 후회돼요. 너무 미안하고."

1972년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지금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문영미(60)씨의 어머니 정옥순(96)씨는 올 2월 세상을 떠났다. 문씨와 둘이서 30년 가까이 함께 살았던 어머니는 3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시자 집안일만 하던 어머니는 행상에 나서 1남3녀를 키웠다. 문씨는 "말이 없고 자기 관리가 확실한 분이었다"며 "항상 새벽 5시 전에 일어나셨고, 가족이 다 잠든 후에 주무셔서 어렸을 때 어머니가 주무시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방송인 문영미씨가 22일 서울 당산동 집에서 3년 전부터 치매를 앓다 올해 2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뒤에 놓인 문씨와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에서 어머니는 활짝 웃고 있다. 문씨는 “제일 아끼는 사진”이라며 “원래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엄마인데 (사진에서) 활짝 웃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조르면 아무 말씀 없으시다가 사흘 뒤쯤 밥상에 고기가 조금 올라오는 식이었어요. 꼭 필요한 말씀만 하셨고 언제나 자식들을 위해 당신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셨지요." 매사에 철저했던 어머니는 아흔이 넘도록 정정했다. 온종일 집에서 성경책을 읽었고, 집 주변을 산책했다. 문씨가 방송에 나오는 걸 보면 "우리 딸 나오네"라고 한마디 하고는 말 없이 TV를 봤다. 문씨는 "딸이 코미디언이라 개그 프로그램에 그렇게 많이 나왔는데 우리 엄마는 끝까지 보면서도 한 번 웃지를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 어머니가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다. "절약하며 사신 분이 갑자기 매일 1시간 넘게 목욕을 해요. 그러고는 밖에 나와서 정수기 물을 받아서 몸을 헹궜어요.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수돗물보다 (정수기 물이) 더 깨끗하잖아'라고 했어요."

이뿐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5∼6시간씩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일이 잦았다. 문씨가 들어가 보면 이불을 반듯하게 정리하는 일을 몇 시간 동안 계속하고 있었다. 이불을 정리한 후엔 방바닥에 있는 먼지를 하나씩 열심히 손으로 주워담았다. 문씨는 "깔끔했던 성격이 치매 증상으로 더 심하게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평생 라면을 안 먹던 어머니는 라면을 5∼6개씩 끓여놓기도 했다. 문씨가 방송일을 다녀오면 그릇 6개에 각각 따로 끓인 퉁퉁 불은 라면이 담겨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라고 화를 내는 문씨에게 어머니는 "내 거랑 네 거랑 아침·점심·저녁에 먹을 라면 끓여놨다"고 했다. 문씨는 "어렸을 때 라면을 끓여주면서도 엄마는 한 젓가락도 안 드셨다"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옛날부터 우리 엄마가 사실은 라면을 많이 먹고 싶었나 보다. 그때 못 먹은 게 아쉬워서 그렇게 라면을 끓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어머니는 치료약을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먹었다. 30일치 약을 갖고 오면 정확히 30일 후에 마지막 약봉지를 뜯을 정도였다. 문씨는 "어머니가 나이 드신 후에는 항상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살다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며 "병에 걸리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무슨 약인지도 모르면서 '엄마 약'이라고 하면 열심히 드셨다"고 말했다.

문씨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한 번도 살갑게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은 게 가장 후회스럽다고 했다. "항상 심하게 화만 냈어요. 사실 치매 환자치고는 우리 엄마 증상은 별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강직했던 엄마가 치매에 걸려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문씨는 "뒤늦게 치매에 대해 조금 알게 됐는데, 치매 환자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에게 화를 내지 말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라'는 것이었다"며 "나는 정말 너무 못난 딸이었다"고 말했다. 문씨는 2년 전부터 여러 병원에서 호스피스로 봉사 활동을 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중단했다.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문씨는 최근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내놨다. 금방이라도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아서다. 생전에 어머니가 쓰던 방엔 영정 사진과 성경책만 놓여 있다. 문씨는 "한 번도 자식들한테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셨던 어머니가 아흔이 넘어 왜 갑자기 치매에 걸리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며 "치매에 걸린 것 자체가 아마 자식들한테 처음으로 손을 내민 게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그 손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저처럼 이런 후회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