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얼마 전 인간의 정직성과 이기주의적 행동에 대한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소개됐다. 피험자들에게 수학 문제를 주고 혼자 알아서 풀라고 했다. 문제를 푼 뒤 옆에 있는 답안지와 비교해 정답이면 병에서 과자를 꺼내 먹어도 되는 상황이다. 혼자 있다고 생각되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정직하게 문제를 풀까? 핵심은 방의 밝기였다. 밝은 방에서 문제를 풀게 하면 대부분 피험자는 정직하게 문제를 풀지만, 방을 어둡게 만들면 만들수록 피험자들은 커닝하고 문제가 틀려도 과자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주변이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인간은 본능적으로 덜 정직해진다는 것이다. 다음 실험에선 피험자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 앞에 있는, 역시 비슷한 실험에 참가했다고 소개된 다른 피험자와 원하는 대로 나눠 가지라고 한다. 피험자는 어떻게 나누었을까? 역시 방의 밝기에 따라 달랐다. 밝은 방에선 5대5로 나누던 돈을 피험자들은 어두운 방에선 점점 6대4, 7대3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어두운 방이 인간을 더 이기적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뇌는 나의 행동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이기적으로, 하지만 타인이 나를 관찰할 수 있는 밝은 상황에선 이타적 행동을 한다는 가설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타적 행동이란 남을 위한 근본적 배려라기보다 공동체에서 외면당하지 않으려는 전략적 이기주의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에선 이타적 행동을 '자기 집단 위주 이타성'(parochial altruism) 이라 해석한다. 내 자식, 내 친척들은 나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질 확률이 높은 만큼 그들을 위한 이타적 행동은 사실상 간접적으로 '나를 위한' 이기적 행동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인류는 얼마 전까지 유전자를 직접 관찰할 수 없었기에 외모, 언어, 선호도 같은 행동적 패턴을 통해 유전적 관계를 추론해야 했다. 나와 비슷하게 생기고, 같은 사투리를 쓴다면 유전적 친척일 확률이 높을 거란 가설이다. 태어난 동굴과 유전적 친척들로 구성된 집단을 떠나지 않고 대부분 한평생을 살았던 원시시대에는 충분히 논리적인 가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세상을 날아다니고, 다양한 유전적 배경의 인간들로 구성된 현대사회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가설을 세우며 산다. 그렇기에 우리는 확률적으로 유전적 교집합이 존재할 이유가 없는데도 학교 선후배를 챙기고, 정치적 사상이 같은 구성원이라면 무조건 우선적으로 보호해 주려 한다.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지난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착륙 중 충돌 사고를 일으킨 아시아나항공 OZ 214편 사고 여객기를 조사하고 있다. 이 사건은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한국에선 기체나 공항의 문제로, 미국에선 한국인 조종사들의 문제로 보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얼마 전 국내 항공사 여객기가 미국 공항에서 추락한 참사가 있었다. 불과 몇 시간 후 아직 객관적 조사 결과가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 공항 시설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미국 언론들은 대한민국 조종사들의 실력에 물음표를 던졌다. '나와 비슷하면 비슷한 유전자를 가졌을 것'이라는 원시시대적 가설 덕분에 우리들의 판단은 이렇게 여전히 '안으로' 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