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의 다툼 때문에 30대 남성이 260㎞를 달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갑내기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17일 인터넷에서 자신을 조롱하고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하려 한다는 이유로 김모(여·30·무직)씨를 살해한 혐의로 백모(30·무직)씨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광주광역시에 사는 백씨는 지난 5일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에 갔다. 작년 초 인터넷 한 사이트 정치·사회 갤러리에 글을 올리면서 알게 된 김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두 사람은 진보적 성향의 글을 올리며 이 사이트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고 말했다. 김씨가 자신의 채팅사이트 아이디를 백씨에게 알려줄 정도로 둘은 친해졌다. 김씨는 논리적 글을 많이 올려 회원 사이에서 '여신'급으로 불렸다.
하지만 "김씨가 보수 성향의 글을 올리면서 갈등이 시작됐다"고 백씨는 경찰에서 진술했다. 백씨는 주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지지하는 글을, 김씨는 이를 반대하는 글을 올리면서 논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사생활을 거론하거나 욕설을 주고받으며 감정적 다툼이 커져갔다. 백씨는 '너는 창녀다' 등 성적 비하 표현으로 인신공격에 나섰고, 김씨는 '너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고 있다'는 등의 글로 맞받아치며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작년 9월 백씨는 사과 대자보를 써놓고 사진으로 찍어 사이트에 올리며 용서를 구했다. 백씨의 이 사과 글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모방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김씨는 이 사이트에서 더 유명해졌고, 백씨는 그만큼 수모를 당했다. 이 사건을 전후해 김씨는 해당 사이트에 '네 부모가 경찰의 연락을 받으면 너 낳고 먹었던 미역국을 토해내고 싶을 거다 킥킥킥' 등 백씨를 조롱하는 글을 잇달아 올렸다.
백씨는 지난 4월쯤부터 김씨를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길이 15㎝ 정도 되는 흉기를 구입했다. 부산에 가서는 길이 30㎝가량의 회칼도 샀다.
지난 5일 부산으로 간 백씨는 연제구의 한 모텔에 머물렀다. 채팅 사이트를 통해 예전 김씨가 알려준 주소로 김씨의 집을 찾았고, 채팅 사이트 로그인·로그아웃 시간 등을 체크하며 김씨의 외출 여부를 파악한 뒤 버스로 25분쯤 떨어진 김씨 집을 2~3번 찾아갔다.
그러던 중 지난 10일 밤 아파트 5층 집에서 외출을 위해 내려오던 김씨를 3층 계단에서 만났다. 백씨는 "너가 김○○냐?"고 물은 뒤 "누구냐"며 화를 내는 김씨의 몸통 9군데를 15㎝ 흉기로 찌른 뒤 달아났다. 백씨는 범행 5시간 뒤 문제의 사이트에 김씨를 살해했음을 암시하는 패러디물을 올렸다.
경찰은 CCTV 70여개와 인근 차량 블랙박스 170여개 등을 분석해 백씨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탐문 수사 끝에 16일 밤 9시 45분쯤 연제구 모텔에서 체포했다. 백씨는 경찰에서 "(김씨가) 노무현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 나를 그렇게 욕하는 것과,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살인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 등을 보고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경찰은 "백씨가 일반 범죄자와 달리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옷 등을 그대로 갖고 있었고 죄의식이 거의 없는 듯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