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FRB, 양적완화 축소 놓고 오락가락
-“당장 출구전략 나오지 않을 것” 전망 우세…긴장감 여전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말 한마디가 전 세계 금융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그의 입이 열릴 때마다 전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친다.
지난 5월 벤 버냉키 FRB 의장이 "올해 안에 양적 완화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언급한 후, 금융 시장엔 불안감이 팽배했다. 미국의 경제 지표가 좋으면 좋을수록 증시가 하락했고, 신흥 시장에선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출이 이어졌다.
하지만 10일 버냉키 의장의 말 한마디에 분위기는 급변했다. “당분간 미국 경제에 필요한 건 높은 수준의 통화 완화정책”이라는 발언이 전해지자, 11일 아시아 각국 증시가 급등했다. 뉴욕증시 주요지수들도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버냉키 의장의 의중은 뭘까. FRB의 정책은 어디로 흘러갈까. 해석은 분분하다.
◆ 美 6월 고용지표 호조에도 '안심은 금물'
미국의 6월 고용지표가 발표된 지난 5일까지만 해도 양적 완화 축소 시점이 당겨질 거란 전망이 우세했다. 6월 비농업 부문 고용자 수가 19만5000명으로 경제 전문가 예상치를 훌쩍 넘어섰다. 4월과 5월 고용자 수도 종전 발표보다 큰 폭으로 늘어난 19만9000명, 19만5000명씩으로 상향 조정됐다. 이로써 올해 상반기 월평균 고용자 수가 20만2000명을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유력 경제지는 "경제 전문가 사이에서는 9월부터 양적 완화 축소가 시작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은 10일 전미경제연구소(NBER) 콘퍼런스 질의응답에서 "고용 상황이나 노동시장 전망이 개선되고 있다는 신호가 더 분명하게 나타나야 한다"고 했다. 같은 날 공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 내용도 그의 발언에 힘을 보탰다.
이날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앞서 공개된 6월 FOMC 회의록에서는 올해 FOMC 투표권을 가진 12명의 위원 중 '다수(many)'가 "고용 시장 회복세가 더 뚜렷해지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을 냈다. 경제 지표 개선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우세했다는 뜻이다.
6월 미국의 고용지표가 질적으로 크게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진단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6일 기사에서 "고용지표가 좋긴 했지만 '매우 좋지는 않았다(not too strong)'고 지적했다. 고용자가 저임금 직종인 소매·레저, 접객 부문에서 늘었기 때문. 상대적으로 보수가 좋은 제조업 부문의 고용자 수는 전달보다 6000명 줄어 3개월 연속 감소했다.
◆ “‘양적 완화 축소’와 ‘긴축’은 다르다” 진단도
일부 외신은 이날 버냉키 의장의 발언을 해석 문제로 진단하기도 한다. FT는 11일 기사에서 “FRB의 양적 완화 축소는 ‘통화 긴축 정책’과 같은 뜻이 아니다”라고 썼다. 양적 완화 축소가 시작되더라도, 기준금리 인상 시점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설명이 따랐다.
RBS의 기준금리 담당 투자전략가 가브리엘 만은 FT에 “(양적 완화) 축소와 긴축은 서로 다른 문제”라면서 “금융 시장 투자자들은 기준 금리 인상이 먼 미래의 일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고 했다.
버냉키 의장의 10일 발언도 기준 금리 인상은 먼 미래의 일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이날 “실업률이 6.5%까지 내려간다고 해서 기준 금리가 자동으로 인상되는 건 아니다”라며 “노동 시장이 취약하고 물가상승률이 낮아, 기준 금리 인상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미국 FRB는 실업률이 6.5%로 내려갈 때까지는 제로 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혀 왔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닐 셔링 신흥시장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양적 완화 축소는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예상보다 큰일은 아닐 것”이라며 “FRB가 당장 공격적인 긴축 기조로 돌아서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적 완화 축소는 여전히 세계 경제에 민감한 사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리비에 블랑샤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9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양적 완화 축소를 세계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줄 3대 위험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또 그에 앞서 세계은행은 “FRB의 양적 완화 덕분에 개발도상국들은 싼 금리로 인프라 투자자금을 조달해 왔다”며 “양적 완화 축소가 시작되면 이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고 CNBC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