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때문에 오래 기억되는 노래들이 있다. 함박웃음으로 아득히 저무는 이종용의 '겨울아이', 차가운 파도 소리로 시작하는 푸른하늘의 '겨울바다', 풀벌레·기적 소리 등을 악기처럼 썼던 여행스케치 노래들이 그랬다.

음악조차 빠르게 소비하고 버리는 풍토에서 맥이 끊겼던 '음과 소리의 만남'을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김민홍·39, 송은지·34)의 5집이 잇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2004년부터 담백하지만 가볍지 않은 어쿠스틱 사운드로 일상을 노래해 왔고, 그 결과물들은 종종 OST와 광고, 블로그의 배경 음악으로 쓰였다.

자연의 소리와 노래가 담긴 앨범을 만든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강경덕·김민홍·송은지(왼쪽부터).

지난 8일 서울 홍대 앞에서 만난 두 멤버가 내보인 음반에는 열네 곡의 노래와 함께 서울과 제주도, 인도의 산과 강·바다·하늘에서 채집한 사람과 자연의 소리들 그리고 소리 담을 때 풍경까지 가득 담겨 있다.

앨범은 우글거리는 기타 앰프 소음을 앞세운 '꿈길'을 시작으로 김민홍이 여행하던 인도 고아(Goa)의 바닷가 소리를 담은 '순간', 서울지하철 망원역 거리 저녁 무렵 소리를 곁들인 '해피 론리 데이', 제주 올레길의 새·바람 소리가 깔린 '유에프오' 등으로 이어지며 죽음·고독·인연 등 일상의 단면을 노래한다.

송은지가 각별히 전하는 '리스닝 매뉴얼'. "아무 소음(騷音) 없는 곳에서 귀를 활짝 열어놓고 들어달라. 그저 각자 듣고 느끼면서 떠올리는 수많은 생각과 이미지들, 그게 우리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소리 대부분을 채집한 사운드엔지니어 강경덕(30)도 이번 앨범만큼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당당한 일원(一員). 그는 "풀벌레 소리, 종이 구겨지는 소리, 생선 굽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노랫말과 음률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소리들을 골랐다"고 했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라는 이름으로 음악 여정을 떠난 지 내년이면 10주년. 김민홍·송은지는 "틀로부터 자유롭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다 보니 팀을 오래 꾸릴 수 있었다"고 했다.

"역설적이지만 우린 사실 밴드도 아니고 결성도 한 적이 없다. 한 번 뜻이 맞아 음악을 하며 여기까지 왔을 뿐."(송은지) "결성한 적이 없으니 해체할 일도 없다. 하하. 다음 앨범이 여든 살 때 나온다 해도 이상할 일이 아니지."(김민홍)

둘은 개별 뮤지션으로도 각자 뜻깊은 활동을 펼쳐 왔다. 4집과 5집 사이 휴식기에 김민홍은 강경덕과 '단편 숏컷'이라는 팀을 꾸려 음향 중심의 프로젝트 앨범을 만들었다. 송은지는 여가수들과 함께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돕기 위한 음악 프로젝트 '이야기해주세요'를 이끌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다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로 모인 두 사람은 대구·부산·창원·전주·대전·춘천·제주 등으로 이어지는 전국 공연을 떠날 참이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삭막해지는 걸 보면서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우리를 몰라도 우리 음악에 목마른 사람들이 어디엔가 생길 거라는 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