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학과를 운영해온 일부 대학들이 자율성을 강조해온 계약학과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학위장사’를 하거나 편법운영을 해온 사실이 교육부의 전수조사 결과 드러났다.
2012년 말과 올해 초 두 차례에 걸쳐 교육부가 실시한 전수조사에 따르면 계약학과를 개설하고 있는 전체 105개 대학 가운데 16개 학교가 계약학과를 부실운영해온 사실이 적발돼 개선 및 시정조치를 받았다. 주간조선이 단독입수한 교육부의 ‘2012년 하반기 계약학과 현장점검 지적사항 및 조치결과’에는 계약학과를 운영해온 대학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울대를 비롯해 유명 사립대학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계약학과는 산업체가 대학과 계약을 맺고 교육과정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력을 양성한다는 게 계약학과의 도입 취지다. 계약학과는 채용조건형과 재교육형 등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채용조건형은 산업체가 등록금 등 학생의 교육 비용을 부담하고 재교육형은 산업체와 학생이 비용을 절반씩 부담토록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의 ‘계약학과 현장점검 지적사항 및 조치결과’에 따르면, 경영전문석사과정(MBA)과 임상의과학과 등 3개의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대학교는 교육부 점검 결과 경영전문석사과정은 사업주 단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학과를 운영해 법령을 위반한 사례로 지적됐다.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대학들은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 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업주 단체가 아닌 사업주와 직접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서울대 경영전문석사과정처럼 대한상공회의소와 계약을 체결할 경우에는 대한상의 소속의 산업체도 반드시 계약에 동참해야 하지만 서울대는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서울대 의학대학원이 운영하는 임상의과학과는 학사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지적을 받았다. 출석일수 미달 학생에게 학점을 부여한 이 학과에 대해 교육부는 ‘학칙을 개정하고 관련자를 문책’하라고 조치했다. 서울대 측은 이와 관련, “교육부의 지적사항을 모두 보완했다. 더 이상 문제가 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국제복지학과 등 5개 계약학과를 운영해온 연세대학교(원주캠퍼스)는 교육부의 점검 결과 일부 학과에서 산업체가 부담해야 할 돈을 학생이 대납한 사실이 드러나 해당 학과를 폐지했다. 재교육형 계약학과의 경우 산업체와 학생이 절반씩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입시를 치르지 않고도 유명 사립대의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산업체 부담금을 대신 내면서까지 이 학과에 입학하려는 지원자가 생겨났다.
◇결혼 관련 협회와 계약해 학과 개설하기도
연세대는 일반 산업체가 아닌, 결혼 관련 협회와 계약을 체결하고 학과를 개설하기도 했다. 계약학과 재학생의 출결 여부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고 학점을 부여한 사실도 드러났다. 연세대 측은 "학비 지급에 있어서 방법상 잘못이 있었고 현재 해당 학과는 폐지됐다"고 말했다.
10개의 계약학과에 총 338명이 재학 중인 인천대학교도 산업체 부담금을 학생이 대납한 사실이 적발됐다. 인천대는 또 법정 수업일수를 채우지 않거나 출석을 하지 않은 학생에게 학점을 부여했다. 교육부는 법정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한 학과의 경우 학점을 취소하고 산업체가 부담금을 납부하지 않은학과는 폐지하라고 주문했다. 일부 계약학과는 대학 캠퍼스가 아닌 별도의 외부 임대시설에서 외부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계약학과 관련 규정에 따르면 외부 강의는 계약학과 개설 계약을 맺은 산업체 소유의 건물에서 해야 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인천대 측은 “올해는 계약학과 학생을 모집하지 않았다. 자체 정비한 뒤 내년부터 다시 계약학과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개의 계약학과를 운영 중인 강원대학교(삼척캠퍼스)의 경우 법정 수업일수를 채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매학기 15주가량 강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영남대학교도 △산업체 부담금 학생 대납 △부적정한 계약학과 개설 △법정 강의일수 부족 및 출석일수 미달자 학점 부여 등의 지적을 받았다. 상지대학교의 경우 강원도 철원, 인제, 홍천 등지에 4개의 외부 교육장을 설치하고 계약학과를 운영해온 사실이 드러나 교육부의 폐쇄명령을 받았다. 이런 외부 교육장은 대학 본부의 관리를 받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일부 대학의 외부 교육장은 자격이 없는 학생이 검증되지 않은 교수에게 교육을 받아 문제가 된 경우도 있었다.
호원대학교는 교육부의 시정조치를 받아 올해 계약학과를 모두 폐지했다. 산업체가 부담금을 납부하지 않았거나 외부 임대시설에서 교육을 하는 등 부실운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호원대 측은 “지방에서는 계약학과를 운영하기가 어렵다. 산업체에서 등록금의 50%를 부담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기업이 흔치 않다. 일부 학생이 자비를 내고 다닌 사실이 알려져 학과를 폐지했다”고 말했다.
한국산업기술대학교는 약 580명의 계약학과 재학생을 두고 있다.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105개 대학 가운데 개설 학과(14개)와 재학생 수가 가장 많은 대학이다. 이 대학의 경우 일부 학과에서 성적 규정을 위반해 교육부의 지적을 받았다. 전체 학생의 93%가 B학점 이상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교육부의 시정조치를 받은 대학으로는 그리스도대학교, 경기과학기술대학교, 한국항공대학교, 성결대학교, 한림대학교, 금오공과대학교, 충북보건과학대학교, 호원대학교, 송원대학교 등이 있다. 이들 대학은 앞서 언급된 대학과 마찬가지로 부실한 학사 운영, 등록급 대납 등의 문제가 적발됐다.
◇계약학과 통해 학위장사 했다는 의혹 제기돼
서울 소재 A대학처럼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곳도 있다. 화장품 회사, 종교단체 소속기관 등과 산학협약을 체결하고 2008년부터 계약학과를 운영해 온 이 대학은 교육부 조사 결과 부적격자를 학생으로 선발하거나 산업체가 부담금을 납부하지 않는 등 총체적 부실운영이 적발됐다. 특히 이 대학은 계약학과로 입학한 학생수가 입학정원을 초과하는 기형적 학사 운영을 해온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A대학 내부에서조차 “대학 경영진이 계약학과를 통해 학위장사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2009년 말 교육부 현장조사 직후 계약학과를 폐지한 바 있는 이 대학은 지난해 다시 사회복지 관련의 새로운 계약학과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지만 재학생의 적격성 여부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A대학의 한 관계자는 “우리 대학도 그렇지만 규모가 작은 대학들은 대체로 계약학과를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다. 브로커들은 대학 졸업장을 받으려는 학생과 재정이 어려운 대학을 연결해주고 대가를 챙긴다. 계약학과의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2년 말 현재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대학은 105개에 이르며 개설된 학과는 총 426개나 된다. 재학생 수만 1만2274명 정도다.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는 불과 2개 대학에서만 운영되고 있는데, 학생수는 전체 계약학과 재학생의 8.5%(1054명) 수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산업체와 계약을 맺는 재교육형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소재 일부 대학의 경우 계약학과 개설을 통해 대학평가의 기준이 되는 재학생 충원율과 취업률을 높이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A대학에서 드러난 계약학과의 문제점이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 것이다. 대학들이 계약학과를 개설하는 것은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부 대학들은 교육부 평가를 잘 받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
국내 대학들은 매년 실시되는 교육부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교육부의 평가 결과에 따라 정부의 재정지원 여부가 결정되는데 평가점수가 낮은 대학은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분류된다. 하위권에 있는 대학들은 평가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퇴출대학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고교 입시담당자들이 해당 대학을 기피하게 되고 이는 곧 신입생 충원율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방대나 수도권의 인지도가 낮은 대학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매년 고교 졸업생이 줄어드는 요즘 신입생 충원율과 재학생 비율을 적정선까지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여건 때문에 규모가 작거나 재정이 부실한 대학들의 경우 계약학과 제도를 이용해 재학생 충원율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의 한 관계자는 “규모가 작거나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대학들은 재학생 충원율을 제고하기 위해 계약학과를 마구잡이로 개설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재교육형 계약학과는 입학정원에 제한이 없어 돈만 내면 입학을 허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계약학과 제도가 도입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개설학과와 학생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08년에는 42개 대학에서 6055명의 학생이 계약학과로 입학해 교육을 받았는데, 지난해에는 105개 대학에 총 1만2274명까지 늘었다.
◇계약학과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
계약학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브로커도 등장했다. 학생과 대학을 연결하며 돈벌이를 하는 브로커들은 입시를 거치지 않고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고 한다. 재교육형 계약학과는 대학과 계약을 체결하는 산업체가 5인 미만 사업장일지라도 학과 개설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지방특성화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개설 요건을 완화한 것이다. 그러나 브로커들은 이런 규정을 악용하고 있다. 5명으로 급조된 회사를 설립하고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대학을 찾아가 계약학과 개설을 협의한 뒤 학생 선발부터 교수 임용까지 모든 업무를 위탁받아 돈벌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계약학과를 개설하고 있는 A대학 관계자의 말이다. “계약학과에 어떤 학생이 들어오고 누가 강의를 하는지 우리 교직원들도 전혀 모르고 있다. 강의도 외부 교육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관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교육부의 감사를 받고 나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학교와 계약을 맺고 학과를 개설한 산업체가 설립된 지 1개월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회사 설립일과 학생들의 취업일이 동일했다.
나이도 20대 초반이 많았다. 어떤 회사가 입사한 지 1개월도 지나지 않은 사람을 비용 부담까지 하며 학교에 보내겠느냐. 나중에 계약학과 학생들이 학교에 서류를 떼러 올 때 만나 보면 자기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입시를 통과하지 않고 서울 소재 대학의 졸업장을 받는 편법을 쓴 것이다.”
현재 재교육형 계약학과 학생들은 산업체에 재직하며 납부하는 4대보험 납부확인서를 대학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계약학과 개설을 위해 급조된 산업체는 4대보험을 대납할 수 있도록 편법 운영하기 때문에 이 확인서만으로는 재직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교수는 “재교육형 계약학과 학생들의 적격성 여부는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을 제출받으면 된다. 국세청에 보고되는 이 자료는 허위로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 대학을 비롯해 일부 대학은 원천징수영수증을 제출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계약학과 제도가 대학과 산업체의 자율에 의해 개설되기 때문에 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과 산업체는 계약학과를 개설하기 위해 양자 또는 제3자 간 협약을 체결하고 교육부에 신고만 하면 된다. 재학생 선발과 자격 등은 전적으로 대학과 산업체가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A대학의 교직원도 “정부의 관리 소홀이 대학이나 학생의 피해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설됐던 계약학과에 문제가 발생해 폐지될 경우 대학은 그동안 투입된 기자재 등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학생들은 학점과 학위가 취소될 수 있다. 교육부가 규정을 강화하지 않으면 이 제도가 편법 입학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교육부에서 계약학과를 담당하는 직원은 1명이다. 이 담당자가 105개 대학에서 운영하는 계약학과를 모두 관리하는 건 물론이고 다른 업무도 맡고 있다. 교육부 담당자는 주간조선과 전화통화에서 “계약학과에 대한 별도 예산은 없다. 정부와 지자체가 개별적으로 계약학과 개설을 지원할 수는 있지만 정부가 예산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감독의 권한도 약하다.
학과 개설과정은 허가가 아니라 신고제이기 때문에 각 대학의 계약학과에 대한 상세한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은 산업체와 정상적인 계약을 통해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재교육을 받는 학생이나 산업체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마치 모든 대학에 문제가 있는 걸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