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6일 남양유업의 한 대리점은 전산망으로 36개 제품에 걸쳐 모두 137박스를 달라고 본사에 주문했다. 하지만 16분 만에 전산망은 엉뚱한 숫자를 보여주고 있었다. 해당 대리점이 49개 품목에 걸쳐 234박스를 주문한 것으로 둔갑해 있었고 그대로 주문은 마감됐다. 본사 영업사원이 제멋대로 전산을 조작해 물건을 떠넘긴 것이다.
이것은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의혹을 조사한 공정거래위원회가 잡아낸 증거의 일부다. 남양유업의 횡포는 이렇게 노골적이고 조직적이었다. 소문이 무성했던 각종 불공정 행위는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고, 남양유업은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전산 주문 조작해 유통기한 끝나기 직전 제품 떠넘겨
공정위에 따르면, 남양유업이 강제로 떠넘긴 물품은 각 대리점에 공급한 물량의 20~35%에 달했다. 특히 수요 예측이 빗나가면서 초과 생산한 제품을 대리점에 밀어내면서 재고 부담을 줄였다. 떠먹는 불가리스의 경우 매주 1600박스 이상 생산했지만 실제로 전국 대리점의 주문은 900박스에 불과했다. 주문이 들어오지 않은 700박스는 본사에서 보관하다가 유통기한이 끝나기 평균 1.7일 전에 대리점에 넘겼다.
이렇게 촉박하게 물건을 받으면 다시 동네 수퍼마켓에 판매할 시간이 없어 폐기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남양유업이 대리점들에 '대리점별로 할당량은 문자 메시지로 전송해드리겠습니다. 자체적으로 주문하지 마세요'와 같은 문자 메시지를 보낸 증거도 공정위는 찾아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횡포 수위는 높아졌다. 2010년 9월부터는 전산망을 수정해 대리점 측에서 최초로 주문한 수량을 검색할 수 없게 했다. 최초 주문량에 대한 기록이 없으면 마음 놓고 주문량을 늘릴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강제로 밀어내기를 해놓고 반품은 거의 받아주지 않았다. 기준을 갈수록 엄격하게 정해 2008년 2.03%였던 반품률이 올해 0.93%로 뚝 떨어졌다.
◇백화점에 보낸 판촉사원 월급도 대리점이 지급하도록 강요
남양유업은 떠넘긴 물품값을 모두 받기 위해 독특한 지급 결제 제도를 만들었다. 본사가 정한 물건값을 삼성카드에서 먼저 받고 나서 삼성카드가 각 대리점에 카드대금을 청구하는 구조인데, 대리점주는 액수가 정당한지 따져보지도 못하고 카드사가 달라는 대로 결제해야 했다. 고병희 공정위 서울사무소 경쟁과장은 "대리점 주인은 제때 카드값을 막지 못할 경우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하는 반면, 남양유업은 억지로 떠넘긴 물건값까지 편리하게 받아냈다"고 말했다.
남양유업의 횡포는 판촉사원들에게 줄 인건비마저 대리점에 떠넘기면서 정점에 달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보낸 판촉사원을 본사가 고용했지만 이들에게 지급한 월급은 대리점주들 주머니에서 빼서 줬다는 것이다. 작년의 경우 판촉사원 397명의 급여 54억원 중 63%(34억원)를 대리점들이 부담하도록 강제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과징금(123억원)이 예상보다 많아 영업이익 감소가 우려된다"며 "법률 검토 후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을 줄여달라는) 소송을 낼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