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전남 해남군 '오시아노 관광단지' 내 '인공해수욕장'. 길이 1.2㎞, 폭 170m, 면적 10만1440㎡ 해변은 개흙이 깔린 벌판이었다. 육지 쪽 일부 모래톱을 지나자 곧장 성인 얼굴·주먹 크기의 돌이 듬성듬성 박힌 자갈밭이 나타났고, 나머지는 해수욕장의 60~70%를 차지하는 진회색 갯벌이었다. 발을 딛자 발목까지 푹푹 들어갔다. 사람 한 명 없이 적막했다. 먹이를 찾는 새들이 이 해수욕장의 주인이었다.
배후시설인 임시 캠핑장에서 캠핑을 하던 박모(44·광주)씨는 "모래가 하얀 인공해수욕장이라고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아주 딴판"이라며 "더러워 해수욕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80억 럭셔리' 해남 인공해수욕장이 5년째 방치돼 있다. 해수욕 시즌이 찾아왔지만, 한국관광공사 서남지사는 "올해도 문을 열지 않을 계획"이라고 7일 밝혔다.
'오시아노 해수욕장'은 한국관광공사가 용역비를 포함해 85억원을 투자해 해변에 다량의 모래(13만㎥)를 쏟아부어 2007년 3월 착공, 이듬해 6월 완성했다. 목포에서 차로 50분쯤 떨어진 해남군 북서쪽 끄트머리 화원면 화봉리에 있는 이 해수욕장은 ▲개펄 유입 ▲모래 유실 ▲수질 악화 ▲편의 시설 미비 등의 이유로 2008년 7월 한 차례 임시 개장한 이후 '개점휴업' 상태다. 공기업 방만 경영과 예산 낭비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관광공사는 당시 개장을 앞두고 모래가 새하얗다는 스페인어 '블랑코'를 넣어 해수욕장 이름도 '블랑코 비치'라고 붙여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개펄이 해수욕장을 점령하자 이후 슬그머니 간판을 '오시아노 해수욕장'으로 바꿨다.
이처럼 해수욕장이 장기 방치된 것은 해수욕장을 감싸는 '수중보'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관광공사는 밀·썰물 차이가 심한 서해의 특성을 고려해 썰물 때도 바닷물을 가둬 24시간 물놀이가 가능하도록 해수욕장 끝에 길이 800m, 높이 1.8m 수중보를 쌓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내외에서 개펄이 많은 바다에 수중보를 세워 인공해수욕장을 만든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목포대 장진호(해양지질학) 교수는 "전문가한테 사전 의뢰만 했어도 이런 엉터리 해수욕장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수중보를 활용한 해수욕장은 동해처럼 개펄이 없는 곳이라야 가능하다. 서해안 쪽은 밀물 때 개펄이 수중보를 넘어와 해안에 쌓이므로 이런 해수욕장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수중보 때문에 쌓인 펄 속에서 유기물을 먹고 자라는 해조류가 번식하고, 해조류가 썩어도 물의 순환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수질은 악화한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돼 해수욕장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장 교수는 "아예 수중보를 더 높여 파도와 개펄 유입을 완전히 막아 인공해수욕장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장종선 한국관광공사 서남지사장은 "개펄 바닥을 갈아엎고 거기에 모래를 다시 포설하고, 수중보 양쪽 수문을 잘 관리하면 문제점이 개선될 것"이라며 "해수욕장은 연간 40여일밖에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 기간은 사계절 갯벌 체험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원래 자연 모래사장을 낀 갯벌이었는데 85억원을 들여 희한한 '인공' 갯벌 체험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