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6·25전쟁에서 전사한 중국군 유해 360여 구를 중국에 반환하겠다고 밝히자, 주목받은 곳이 있다. 바로 '적군묘지'다.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중국군 유해 때문에 유명해진 곳이지만 사실 이곳에는 중국군보다 북한군의 유해가 약 두 배 많이 묻혀 있다.
지난 3일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이곳을 찾아가보니 적막감이 감돌았다. 주민 서모씨는 "주변에 사는 사람 가운데도 여기에 북한군 묘역이 있다는 것을 아는 주민이 그리 많지 않다"며 "가끔 중국 관광객이 와서 볼 뿐이지, 북한군을 추모하기 위해 찾은 참배객은 아직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파주시 관계자는 "아주 가끔 누군가가 와서 꽃을 놓고 간 적은 있긴 하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적군묘지는 1996년 7월에 만들어졌다. 제네바협약의 규정과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조성했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유해들은 원래 대전이나 강원도 양구·원통 등지에 흩어져 있었는데, 정부는 모든 유해를 이곳으로 모았다. 처음 묘지가 조성될 당시에는 유해가 모두 98개였다. 해마다 북한군과 중국군의 유해가 발굴되고, 북한이 내려 보낸 무장공비가 남한에서 사살되기도 하면서 그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적군묘지에 묻혀 있는 전체 유해 수는 1102개다. 367개는 중국군 유해고, 나머지 735개는 북한군 것이다. 묘비에는 묻힌 날짜와 함께 이름, 유해가 발견된 장소 등이 적혀 있다. 상당수 유해는 6·25전쟁 전사자의 묘비다. 대부분 출신과 이름은 알 수 없어 비석에는 '무명인'이라고 적혀 있다.
북한군의 경우 6·25전쟁 전사자 말고도, 무장공비·남파공작원 등 다양한 북한군이 묻혀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을 위해 남파됐던 무장공비들이다. 생포된 김신조씨를 제외하고, 사살된 30명 모두 이곳에 묻혀 있다. 신분이 확인된 사람들은 계급과 이름이 적혀 있지만, '무명인'으로 적혀 있는 사람도 있다.
1998년 남해안 반잠수정 침투사건 때 사망한 무장공비 6명과 1996년 잠수함을 타고 강원도 동해안으로 침투했다가 사살된 무장공비도 묻혀 있다.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대' 소속인 북한군 비석도 보였다. 모두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무명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비석이 세워진 인민무력부 정찰대 소속 북한군은 국내에 잠입해서 활동하던 북한 공작원"이라고 말했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했던 김승일도 이곳에 묻혀 있다. 하지만 묘비에는 '무명인'으로 표기돼 있지 '김승일'이라는 이름은 새겨져 있지 않다. 군 관계자는 "김승일이라는 이름 자체가 가명일 수 있기 때문에 이름을 새겨넣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강으로 떠내려 왔다 인양된 북한 주민 사체, 임진강과 한강에 표류하다 발견된 북한 주민 사체도 이곳에 묻혀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떠내려온 사체가 북한군인지 민간인인지는 정확히 파악이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마땅히 묻을 곳이 없기 때문에 이곳에 묻는다"라고 말했다.
파주 적군묘지는 육군 25사단이 관리하고 있다. 한 해 동안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110만원이라고 국방부 관계자는 말했다. 3일 찾아간 적군묘지는 비교적 깨끗이 잘 정돈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