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출범한지 4개월이 넘고 올해도 벌써 하반기에 접어들었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인사(人事)'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말 중국 국빈 방문 이후 '공개 일정'을 최소화한 채 하반기 국정운영 구상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현장에서 정부 국정과제의 세부 실천방안을 뒷받침해야 할 공기업 등 공공기관장 인선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의 대(對) 국회·정당 관련 업무와 행정 및 치안 관련 업무사항을 보좌하는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도 벌써 한 달 넘게 '공석(公席)' 중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인사 수요를 모두 메운다는 계획이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이대로 가다간 대통령의 하반기 주요 국정 스케줄도 일정 부분 뒤로 밀리는 등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 취임 초 정부조직법 개정 지연과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잇단 '낙마' 등으로 본격적인 국정운영 개시(開始) 시점이 늦어졌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 올 하반기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장 인선, '검증 부담'에 '인물난' 겹쳐 지연 불가피

5일 청와대 등에 따르면, 청와대는 지난달 말 박 대통령의 방중(訪中) 일정이 끝남에 따라 그동안 '보류'해왔던 정부 각 부처 산하 공공기관장 인선 절차를 조만간 재개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달 초 금융지주회사와 관련 단체장 인사에서 이른바 '모피아(옛 재정경제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불리는 경제관료 출신 인사들이 대거 발탁돼 '관치(官治) 금융' 논란이 일고, 또 한국거래소의 신임 이사장 후보 공모 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치권 출신 특정 인사의 내정설(說)이 나도는 등 '낙하산'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 각 부처에 산하 기관장 인선 중단을 지시한 바 있다.

여권 핵심 인사는 "정부 출범 초 '인사 실패'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청와대가 공기업 등 공공기관장 인선에서 만큼 그런 '잡음'을 없애기 위해 기관장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과 전문성 검증을 강화해왔지만, 그러다보니 오히려 관료 출신의 진출 비중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면서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라 해도 이 같은 결과가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박 대통령이 사실상 기관장 인사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공모 접수가 이미 끝난 공공기관장 인사와 관련해선 관료 등 특정 직업군 출신에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통상 3배수 정도로 추천 받았던 예비후보자 수를 대폭 늘려 검증 작업을 진행해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소수의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인사들에 대한 검증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공공기관장 인선 자체가 전반적으로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다른 관계자는 "인사는 한두 가지 기준만 갖고 하는 게 아니다. 참신한 인물이 필요한 곳도 있지만, 또 업무 연속성이 중시되는 곳도 있는 등 기관마다 사정이 다 다르다"면서 "그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관련 절차를 진행하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전문가 출신은 물론, 지역 안배 등의 문제까지 두루 고려해 적임자를 찾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전문성 있는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으며, 특히 취임 초엔 '국정철학 공유'를 기관장 인사의 제1원칙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이 같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지난 이명박 정부 당시 임명됐던 공공기관장들을 한꺼번에 교체하기보다는 잔여 임기와 최근 발표된 2012년 기준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 등을 감안해 순차적으로 교체 인사를 진행해나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 달 정부가 발표한 경영실적 평가 결과에 따르면, 기관장 평가에서 대한석탄공사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 두 곳이 해임건의 대상인 'E등급'을 받았고, 한국수력원자력과 에너지관리공단,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여수광양항만공사, 소상공인진흥원, 우체국물류지원단,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세라믹기술원, 한국우편사업진흥원, 한국임업진흥원 등 14곳이 경고조치 대상인 'D등급'으로 분류됐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청와대의 공공기관장 인선 절차 중단 지시 이후 아직 후보자 공모도 실시하지 못한 기관이 적지 않다"면서 "기관장 교체 인사가 모두 마무리되려면 앞으로도 최소 몇 개월은 더 걸릴 것 같다"고 내다봤다.

때문에 "개별 기관의 입장에선 현 기관장의 '유임'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흐를 경우 업무 효율성은 물론, 조직 안정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일부에선 "공공기관장 인선 지연은 결국 각 부(部) 장관들에게 산하 기관장 인사에 자율권을 주겠다던 박 대통령의 '책임 장관제' 공약이 사실상 물 건너갔음을 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오는 8일 정부가 발표하는 '공공기관 합리화 방안'을 통해 공공기관 개혁 방향을 제시하면서 여론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을 나선다는 계획.

박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공공기관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며 "공공기관 합리화 방안은 국민의 큰 관심사인 재정건전성 문제와 방만한 경영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시급한 정치 현안 없어 靑정무수석 인선도 지연 관측

공공기관장과 함께 인사 지연이 발생하고 있는 곳은 바로 청와대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달 3일 이정현 수석이 홍보수석으로 '수평 이동'한 이래로 벌써 한 달 이상 자리가 비워져 있다.

박 대통령은 그간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통해 복수의 인사를 정무수석 후보자로 추천 받았으나,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내부에선 김선동 현 정무비서관을 승진 기용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정무수석이 직접 상대해야 할 정치권에선 중량감 있는 전직 국회의원 출신 인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의원 출신으론 3선 의원을 지낸 친박(친박근혜)계 김학송 전 새누리당 의원과 김성조 전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거명된다.

그러나 청와대 일각에선 "일단 6월 임시국회가 마무리되는 등 청와대가 직접 개입할 필요가 있는 정치 현안이 별로 없다는 판단에서 정무수석 인선이 더 지연될 것 같다"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는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불거진 국가정보원의 정치·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문제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을 둘러싼 대화록 공개 논란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적에도 "우리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방중(訪中) 전 거론됐던 박 대통령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회동 문제도 현재로선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은 올 하반기 국정운영을 대외적으론 '외교', 대내적으론 일자리 창출 문제를 포함한 '경제' 분야에 집중한다는 계획이어서 정치 현안과의 '거리두기'는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