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62) 대통령을 축출하면서 이집트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작년 6월 30일 첫 민선 대통령이 탄생한 지 1년 만이다. 반(反)무르시 시위대는 군부 결정에 환호했지만 무르시 지지자들은 저항하고 있다. 국론이 양분되면서 유혈 충돌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국가의 운명은 또한번 이집트의 '실세'인 군부 손에 좌우될 상황이지만 조기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고 정부가 구성되기까진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

◆ 아랍의 봄 '희망'이 '실망'으로

군부 최고 사령관인 압델 파타 엘 시시(58) 국방장관은 3일(현지시각) 생방송 연설을 통해 "무르시는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다"며 무르시 축출을 공식화했다. 이번 사태의 뿌리는 이집트 국민의 실망감이다.

2011년 중동을 휩쓸었던 반정부 시위인 아랍의 봄을 계기로 수십년 철권통치를 이어온 호스니 무라바크 대통령이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 후 무르시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경제 개혁과 민주화에 대한 이집트 국민의 열망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크게 달라진 것 없었다. 영국 BBC는 "무르시 집권 1년 동안 정치 불안이 계속되고, 경제는 가라앉으면서 여건이 나빠졌다"고 전했다. 특히 작년 11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사법부의 의회 해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파라오 헌법 선언'을 발표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무르시가 새 헌법 초안을 강행처리하면서 야권과 시민단체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그후에도 무르시가 속한 무슬림형제단이 요직을 휩쓸다시피하면서 같은 이슬람 세력 내에서도 분열이 일어났다.

미국 외교협회(CFR) 리차드 하스 회장은 3일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에서 "민선으로 당선된 무르시가 간과한 것은 민주주의의 타당성은 선거라는 절차를 초월한다는 점"이라며 "거리에 뛰쳐나온 수백만명의 시민들은 자신들이 정치 참여에서 배제됐다고 느꼈으며, 다시는 민선이 치러질 수 없다는 점을 우려했다"고 분석했다.

무르시 축출 발표 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군부는 민간 정부에 전권을 신속하게 되돌려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하진 않았지만 이집트에 제공하던 원조를 재검토할 것을 행정부에 지시했다. 미국은 쿠데타가 발생한 곳에는 원조를 중단하는 원칙을 갖고 있다. 미국은 매년 이집트에 15억달러 규모의 군사 및 경제 지원을 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사태 진정을 촉구했다.

◆ 다시 군부 손에 달린 이집트 운명

군부는 무르시 대통령 축출 후 직접 정권을 장악하지는 않았지만 정국은 사실상 이들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시 장관은 무르시 축출을 알리면서 미래 국정운영 로드맵도 함께 발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군부가 암묵적으로 정치통제에 나설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지만 2년 전 무바라크 축출 때와 비교하면 군부의 대처가 구체적이고 신속하다"고 평가했다. 시시 장관은 과도 정부를 아딜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에 맡기고, 대선 및 의회 구성 일정도 헌법재판소에 일임하기로 했다.

시시 장관은 "만수르 대통령 대행이 과도 정부에서 기술관료 중심의 내각을 꾸릴 것"이라며 "헌법 개정안 초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를 기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부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시시 장관은 작년 8월 무르시가 임명한 인물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군사 교육을 받아 서방통으로도 불린다. 일각에선 그가 이집트 정국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시시 장관은 연설에서 "군부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관건은 각 정당간 이견이다. 강경 이슬람파이자 극우 정당인 알누르당은 무르시 축출과 조기 대선에는 찬성해 왔지만, 자유·세속주의 인사들을 새 정부에 참여시키는 데 반발하고 있다. 반면 반(反)무르시 시위를 주도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등 중도·좌파 성향의 야권 인사들은 승리를 자축하는 분위기다.

무슬림형제단의 행보도 관건이다. 시시 장관은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을 참여시킬지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무르시 축출을 계기로 무슬림형제단 주요 인사들은 무르시와 함께 군사시설에 체포돼 있다고 로이터는 4일 보도했다. 중동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슬림형제단이 세력화에 나설 경우 더욱 큰 폭력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무슬림형제단의 고문 격인 에삼 엘 에리언은 이슬람 세력을 향해 "항복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고 NY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