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각광받고 있는 미국 소설가 더글러스 케네디(58)의 1997년 작 소설이 원작인 프랑스 영화 ‘빅 픽처’(2010)가 뒤늦게 한국을 찾아왔다. 2007년 발표한 ‘파리 5구의 여인’이 2011년 동명 영화로 제작돼 지난 4월25일 국내 개봉한 데 이은 것이다.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2006)의 프랑스 감독 에릭 라티고가 메가폰을 잡으면서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L’homme qui voulait vivre sa vie)’라는 불어 제목으로, 뉴욕과 몬태나주 마운틴폴스(가상의 지명, 실제로는 미줄라)를 배경 삼은 원작 대신 파리와 동유럽 아드리아해 연안 몬테네그로 등지에서 촬영됐다.
주인공인 뉴요커 벤은 프랑스인 폴 엑스벤이 됐다. 사진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강권으로 변호사가 된 폴은 아름다운 아내, 자녀들과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아내가 이웃집 아마추어 사진가 그렉 크레메르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자신에게 이죽거리는 그렉을 우발적 실수로 살해한다. 이후 자신이 사고사로 죽은 것처럼 위장한 채 그렉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된다.
자신이 죽인 자의 신분으로 위장한다는 내용은 이미 영화화된 인기 소설이 반복한 주제다. 미국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씨’ 원작 알랭 들롱 주연 ‘태양은 가득히’와 맷 데이먼 주연 ‘리플리’가 만들어졌다. 일본 소설 ‘화차’를 원작으로 변영주 감독이 동명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거론된 작품들이 절박한 처지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심리를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면, ‘빅픽처’에서는 그러한 서스펜스가 확실히 떨어진다. 계획적인 범죄가 아니라 우연한 기회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게 된다는 원작의 향취를 살려내기 위한 감독의 선택이었을까. 소설이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드러나는 죄책감과 불안감, 서서히 조여 오는 현실에 대한 긴밀한 묘사로 독자들을 몰입시켜 해외에서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면, 영화는 이를 시각적 언어로 재생하는데 실패한 듯 보인다. 영상미에 신경을 쓴 것은 알겠는데 좀 더 짜임새 있는 연출과 편집, 적절한 내레이션과 서늘한 배경음악 등의 활용으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심리에 공감하도록 해야 했다. 도피과정이 풍경의 나열에 그치면서 너무 늘어진다. 시사회 중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집중도가 떨어진다.
폴 역의 로망 뒤리스(39)는 전형적 미남은 아니지만 호소력 있는 마스크가 일품이다. 5월22일 국내개봉한 ‘사랑은 타이핑 중!’과 ‘하트 브레이커’, ‘사랑을 부르는 파리’, ‘아르센 루팡’, ‘스패니쉬 아파트먼트’ 등에 출연하며 프랑스 대표 남우로 급성장 중이다. 전설적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70)가 여전히 우아한 모습으로 폴과 함께 로펌을 공동 창업한 앤 다마조 역으로 출연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4일 개봉.